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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9일 설교

“귀순(歸順)하자!” (대하 30:1-9 ‘히스기야 왕의 유월절ㄹ 회복’) 19.5.19.

제가 초등하교에 다닐 때만해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교사의 권위는 임금이나 부모나 똑같다)라는 말을 당연시하였다. 그렇지만 요즘은 신화나 다름없다. 그만큼 교사의 권위는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온 선생님들이 회의감과 무력감을 호소하며 명퇴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시대에 ‘참스승’으로 자리매김을 하려면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 딱 정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학생의 처지에 관심을 갖는 ‘애정’과, 공부를 흥미롭게 하는 ‘교수법’, 학생들과 마음을 공감하는 ‘소통’, 이 세 가지를 빠뜨릴 수 없다. ‘애정, 실력, 소통’이라 하지만 이 여건을 갖춘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올해로 교사가 된 지 3년 차를 맞습니다. 임용시험 준비 시절, 교사가 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을 줄 알았는데…. 요즘 저는 매일 갈등과 자괴감의 연속이에요. 꿈꿨던 교사가 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가혹합니다. 매번 수업시간,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의 3분의 2가 책상에 엎드려 잡니다. 제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아이들도 많지요. ‘내가 무섭지 않아서 그럴까’라고 고민도 했지만, 혼을 내보면 대부분 역효과만 나더군요. 학교폭력업무, 생활기록부작성, 수업준비 등 24시간이 부족하게 교사로 있지만 ‘좋은 선생님’이란 수식어는 제게 영영 따라붙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과 달라도 너무도 다른 교실 풍경… 언젠가 제가 학생들에게 ‘좋은 스승’으로 기억될 날이 올 수는 있을까요?”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육지에서 배를 타고 40분을 가야 도착하는 전남의 섬마을 조도. 거기 유일한 고교인 조도고에서 근무하던 조연주 교사(54· 여)는 자원해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짓기 시작했단다. 부모님 대부분이 뱃일이나 밭일을 나가서 도시락을 챙겨오지 못한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 이전에 과자나 컵라면을 먹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 자녀라면 저렇게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걸 보고만 있겠는가?’ 처음엔 간단한 김밥을 만들었지만 나중엔 아예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식재료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자비부담을 아끼지 않고 계속했더니, ‘밥 짓는 선생님’으로 불렸단다.

매일 ‘선생님의 밥’을 먹던 아이들은 선생님과 한 마음이 되어갔다. 대학진학을 멀게만 생각하던 아이들이 어느덧 조 교사와 함께 공부씨름을 시작하더란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개교 이래 최초로 서울대 합격생이 생겨났고, 전남대와 한국해양대, 교대로 이어졌다. 교육부와 한국교직원공제회가 매년 선정하는 ‘대한민국 스승상’에서 제1회 대상을 수상하였단다. 그는 “열악한 여건에서도 꿈을 이룬 학생들이야말로 나의 훈장”이라고 말했단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을 양육해낸다면 그 성도들은 목자의 면류관’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는 하나님의 자녀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면류관 감으로 믿음생활을 훌륭하게 해가고 있는 분이 바로 오늘 설교본문에 뚜렷이 드러나 있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1). 히스기야 왕이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을 보내어 유월절을 지켜서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함을 누리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열왕기하 18장 10-11절을 참고하면 훨씬 뚜렷해진다(‘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3-7. 히스기야 왕 통치 6년에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 왕에게 함락당하고 사로잡혀갔지만, 함께 유월절을 회복하여 그 고난에서 해방하자고 설득한 분이 히스기야 왕이었음! = 대하 30:6. 고난의 현실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법칙으로, 신앙적으로 풀어갔다는 것. 이런 게 순종이고 한없이 중요하며 저와 여러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임! 믿음 진보, 기적예약, 축복징조).

전기는 눈에 안 보이지만 분명히 실존하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전구에 빛을 내고 컴퓨터를 작동시키며 기계를 돌린다. 생각도 눈에 안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대로 되는 일은 허다하다. 슬픈 생각을 하면 슬퍼지고, 승리를 생각하면 의욕이 생기고, 불치병을 생각하면 저절로 우울해진다. 환경자체는 변하지 않는데, 생각을 불길하게 하기 때문에 절망적인 현실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이 건전하고 건강한 사람은 창조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는 마음가짐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생각이 병들면 사람 탓, 선생님 탓, 정책 탓, 환경 탓, 하다하다 탓할 것이 없으면 운수 탓을 한다.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자. 어렵고 힘들고 괴롭다. 낙심된다. 이럴 때 탓을 용납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언약을 묵상하며 기도하고 찬송하면 하나님의 언약법칙으로 풀어갈 수 있다. 이 이치를 히스기야 왕이 알아차리고 온 국민을 설득시켰다는 것인데, 그게 대단한 정직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이다.

자 그러면 히스기야 왕의 유월절 준비를 좀 더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화살표를 함께 찾아보자.

1) 의논(2)

히스기야 왕은 유월절 회복잔치를 혼자 독단으로 하지 않고, 왕인데도 방백들과 온 회중까지 의논해서 추진하였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아주 탁월한 묘안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정한 때에 지킬 수 없었음’ = 출 12:6, 2 중심을 민 9:10 중심으로 순종할 수 있게 됨!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6.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11.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1-2, 6-8, 11). 그런데 첫째 달에 불가능한 처지이었음. ‘그 때에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 날에 모세와 아론 앞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었거니와 우리를 금지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심은 어찌함이니이까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령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민 9:6-11. 출애굽기 말씀대로 하면 제사장 숫자 확보와 촉박한 기간으로 불가능했는데, 민수기 말씀을 찾아내서 가능해졌던 것임!<3> 이런 게 의논의 유익이고 위력임. 성령의 도우심으로 창조적 묘안착안. 돌파구!).

하나님의 창조적 아이디어작품이 결혼이다. 결혼은 마치 이인삼각경기를 하는 한 팀이다. 그래서 ‘1+1=2’가 아니라 ‘1+1=2만 아님’이다. 서로 하기 나름대로 창조성을 맛본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사랑의 크기를 알게 된다. 인류를 사랑할 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남편을 사랑하기 어렵고, 김정은은 용서하면서도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의 실제를 알아차릴 때 자신의 미움도 시인하고 관대해지며 인내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다. 평행성 대화 말고 대화의 기술로 깊은 마음을 묶어내는 성숙한 대화 말이다. 히스기야 왕이 그랬다. 저와 여러분도 의논할 줄 알게 되기를 축복!

2) 돌아와(8)

히스기야 왕이 보발꾼들에게 보낸 친서에 이러한 말이 있었다.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여호와께 돌아와’(תנו-יד 티누 야드 give a hand. ‘submit’-NIV- ‘yield’-NKJV, Amf- ‘歸順’-개역- 반항심을 버리고 어떤 체제에 순종함. = 북한이탈자, 탈북자, 새터민, 자유이주민... 깨닫고 결정하고 행동함).

지금으로부터 51년 전 1968년 미국의 함정 푸에플로호가 동해해상에서 북한으로 납치당하였다. 그 함정은 일본의 요코스카 항에 정박 중이었다. 주일예배시간에 맞춰 군목이 배에 올라가 예배를 인도하려 하자 그 배의 승무원과 수병들이 예배를 거부하였다. 할 수 없이 군목은 그날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는데, 이튿날 원산 앞 바다로 출동하였다가 북한의 경비정에 나포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1년 후에 승무원 80명이 풀려나 기자회견을 했는데, “1년 동안 포로로 지내면서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하였고 빵도 먹고 농구도 하였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배를 금지하는 곳에서 강제로 자유로운 생활은 지옥 같더라.”라고 고백하였다.

마찬가지로 히스기야 왕도 자원, 자발, 자유로 하나님께 귀순하여 유월절을 회복시키자고 권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생활도 자원으로 이루어지길 축복한다. 아멘.

3) 여호와(9)

히스기야 왕이 유월절을 전국적으로 화복시키려고 애를 썼던 일이 의논과 귀순이라고 설명했는데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로 인식시키는 일 즉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다’함이었다. 이점을 위대하게 칭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출 34:6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이 말씀은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을 때 하나님이 직접 자신을 강조하고 깨우쳐 선포하신 것이다(רחום 라훔. merciful, to have compassion, pity. 상태. חן 헨 to be grace, to show favour, to bestow in mercy and kindness. 행위).

하나님의 공평한 창조를 각자무치(角者無齒 뿔이 있는 짐승에게는 날카로운 이빨이 없다). 소는 뿔과 풀 뜯는 이빨로 살아가고, 호랑이는 뿔 없이 날카로운 이발과 발톱으로 살고, 새는 약한 다리를 튼튼한 날개로 극복하고, 장미꽃은 예쁘나 열매가 없고, 사과는 꽃이 별로이다. 세상사 100%는 없다. 재물과 권세, 명예, 건강, 무위도식까지 욕심 부리지 말자. 모든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고 그걸 개성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서로 상생하게 협력하자는 것이다.

어떤 총각이 염라대왕께 간구했단다. “대왕님, 제 아내는 우선 이쁘고 큰 키에 날씬하며 요리와 살림을 잘하는 현모양처인 부자 집 딸로 정해주십시오.” 곧바로 들려온 대답은 “야 임마, 그러한 여자가 있으면 내가 갖지 너한테 주겠냐?”

하나님의 심오한 창조섭리를 따라 순종할 때 비밀한 자비와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 이제 오늘 설교의 골격에 저와 여러분의 믿음중심의 닻을 내리자. 오늘 설교는 히스기야 왕의 유월절을 회복준비 하는 모습이다. 의논으로! 귀순으로! 하나님인식을 正! 저와 여러분의 믿음신호등이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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