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4일 설교

April 14, 2019

                          “히스기야 왕의 정직!” (대하 29:1-11 ‘히스기야 왕의 믿음정치’) 19.4.14.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동독인 500만 명 정도가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이동했지만,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한 사람은 5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단다. 그런데 동독으로 이주했던 사람들 중에 ‘홀스트 카스너’(Horst Kasner) 목사님이 있었는데, 그 목사님은 자유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떠나버린 동독에 가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었기에, 겨우 6주된 신생아와 부인을 데리고 동독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그는 동독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현실에 맞서며 목회자의 삶을 시작했단다. 카스너 목사님은 딸 앙겔라를 성경의 가르침대로 엄격하게 키워갔다. 그러나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동독은 목회자 가족에게 믿음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앙겔라는 꿈꾸던 교육자의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아버지의 권유로 물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단다.

   드디어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 동토의 땅 동독에 자유의 물결이 거침없이 흘러들어왔다. 그녀는 동독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알고 자랐기에 통일독일에 필요한 인물로 양쪽을 어우르는데 많은 장점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논리적인 사고와 신중한 언행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점점 기반을 잡아가더니, 2005년 그녀는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이자 동독출신 총리가 되었다. 그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이다. 그녀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을 이끌면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사랑은 눈앞에 있는 고난거리를 치워주는 게 아니라 사망에서 벗어나오도록 길을 열어주고, 구조의 길이 되어 주는 헌신이기도 한데, 이러한 헌신을 ‘행함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을 좀 관찰하는 마음으로 읽어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2.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는 이 말씀은 역대기 성경에 히스기야와 요시아, 두 왕 밖에 없음. 그만큼 하나님이 보시기에 탁월한 정직이었음을 말해 줌!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보고 배워서 반영하는데 아주 좋은 신앙인을 만난 것임. 앞으로 몇 주간 히스기야 왕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자녀 삶으로 살아가는데 요긴한 보물들을 수확하게 되길 축복함).

   성경을 연속극 보듯이 줄거리만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경을 망원경으로 보다가 현미경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서 창세기 첫 장을 읽을 때 전자는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셨고, 첫째 날 빛을 창조하고, 둘째 날 궁창을, 셋째 날 식물을... 마지막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렇게 그 줄거리 내용을 확인하고 간간이 암송하기도 한다. 그런데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먼저 망원경으로 전체를 보면서 ‘창조’라고 인식한다. 그런 후에 현미경으로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살펴보면서 천체물리학과 자연과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학, 법학, 윤리학, 사회과학 ... 그러한 개념들과 법칙, 원리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성경의 위대함을 경탄한다.

   우리 교우들이 착각하는 것을 조심할 바는 목사님들의 설교로 성경을 많이, 깊게 안다고 확신하는 점이다. 교회가 오늘 날 불신세상의 ‘핍박’이 아니라 ‘조롱’을 받게 된 문제점은, 성경이라는 바다의 창파를 가보지 않고 너무나도 초보적인 성경입문만 반복하여 성경교훈의 젓이나 먹는 어린 아이로 머물러 있기 때문 아닌가? 믿음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키우는 하나님의 자녀 삶은 성경 말씀의 연구를 집중하여 하나님의 언약법칙과 원리 그리고 준행할 바를 터득하는 것이다(‘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2-14),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느 8:8-9, 12),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스 7:10-11). 이렇게 될 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눅 5:8, 10). 성경을 읽다가 깨달아지는 말씀에 밑줄을 긋거나 색깔을 칠하고 여백에 메모를 해 두는 분이 있다. 성경을 깨끗하게 읽는 것보다 발견흔적을 표시해 두는 분이 믿음중심도 삶도 깨끗하고 뜨거우며 확고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자신의 성경검사 한번 살펴보실래요? 히스기야 왕은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가르침에 자신의 삶을 포개는데 특출하였다. 이런 게 고난주간에 필요한 몫이고 믿음의 진보이며 저와 여러분이 꼭 사모할 내용이다. 아멘.

   자 그러면 히스기야 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저와 여러분의 정직수준을 높여줄 것을 함께 찾아보자.

   1) 할 마음(10)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 이 말씀은 히스기야 왕의 믿음중심, 신앙열정, 소망의식을 말해준다.

   원효는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가, 밤길에 겨우 토굴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밤중에 목이 말라 바가지에 담긴 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다시 잤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토굴이 아닌 오래된 무덤이었고, 마신 물은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나자 갑자기 구역질이 나고 토하고 말았다. 그런 후에 원효는 깨달았다. “간밤에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물을 마시니까 달콤하던 물맛이, 해골에 고인 썩은 빗물임을 알자 온갖 추한 생각과 함께 구역질이 일어나도다!” “모든 것이 마음에 따라 생기는 법”(世上萬事一切唯心造 내 마음에 色慾이 없다면 여인은 목석이나 다름없다. 여인이 스님을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님이 여인을 색안(色眼)으로 보는 법). 원효는 의상과 헤어져 돌아왔고 대사로 살았지만 나중에 태종무열왕의 둘째딸 요석공주(瑤石公主)와 설총을 낳고 대사의 옷을 벗었다고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18-19, 21-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히스기야 왕처럼 ‘할 마음’을 간직하고 신앙생활을 해가길 축복한다. 아멘.

    2) 모으고(4, 11)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모으고’ 11절에 보충설명을 잘 밝혀놓았다. 하나님께서 택한 사명을 재확인시켜 불을 질렀던 왕이 히스기야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이란 수식어를 특별히 붙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으르다’(שׁלה  솰라 to be quiet, negligent, failure, fault. error. 하나님의 택함에 결함을 만들지 말자고 깨우쳤음!).

   한 이등병이 추운 겨울날 우물에서 손을 불며 찬물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소대장이 그것을 보고 안쓰러워 한마디 했다. “김 이병, 저기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다 하지.” 이등병은 소대장의 말대로 취사장에 뜨거운 물을 얻으러 갔다가, 고참에게 군기가 빠졌다고 원산폭격 기합만 받고 왔다. 다시 찬물로 빨래를 하는데 중대장이 지나가면서 “김 이병, 그러다가 동상 걸린다! 취사장에서 뜨거운 물 좀 얻어서 해라.” 이등병은 “예!”라고 대답만 하고, 취사장에 가지 않았다. 가 봤자 기합만 받기 때문이었다. 그냥 빨래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인사계님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김 이병, 지금 취사장으로 뛰어가서 내가 세수를 하겠다고 주전자에 뜨거운 물 좀 받아 온다. 실시!” 이등병은 취사병에게 보고하고, 금방 뜨거 운 물을 가져왔다. 인사계님이 다시 명령했다. “김 이병, 그 물로 언 손을 녹여 가며 빨래를 한다. 그래야 동상을 피한다.”

    소대장과 중대장, 그리고 인사계 모두 부하를 아끼는 마음은 같았지만 실제로 부하에게 도움을 준 분은 인사계님뿐이다. 소대장은 도움이 아니라 괴롭힘이었다. 나의 생각이 상대방에게 도움을 줬다고 착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소에게는 풀을 주고, 사자에게는 고기를 주는 배려일 때 사랑이다. 이런 배려를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한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 입장에 정통하였다.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우리도 이런 배려를 시도해 가길 축복한다! 아멘.

   3) 수리(3)

   ‘첫째 해 첫째 달’ 이 말씀은 시작하는 출발점을 말해준다. 우리 속담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일단 시작을 하라는 충고지요. 그렇지만 ‘첫 단추를 잘 꿰라’는 말도 거의 속담급이다. 또 독일이 자랑하는 시인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어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렇다면 히스기야 왕은 천리 길 한 걸음을 양궁의 ‘X-Ten’ 점수로 시작한 셈이다.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붕어빵을 파는 가게를 지나다가 붕어빵을 먹겠다고 엄마에게 졸라댔다. 엄마는 붕어빵을 1개를 사서 아들에게 주었더니 하나를 더 사 달라고 졸랐다. 아이는 양손에 하나씩 붕어빵을 들고 신호등을 건너더니 핫도그 가게 앞에 멈추어 서서 말없이 핫도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핫도그를 하나 사주었다. 그 아이가 어떻게 핫도그를 받아먹은 줄 아는가? 아이는 입을 짝 벌리는 핫도그를 기다리고 있더란다. 양손의 붕어빵 중 하나를 엄마에게 주고 한 손으로 핫도그를 받아먹으면 될 텐데도 말이다. 이게 탐심이다.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어른들도 실제로 있다. 단지 어른들의 탐심은 입을 벌려 핫도그를 받아먹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뒷거래나 뇌물로 나타난다. 탐심은 하나님의 자녀 삶에서 첫 단추를 잘 못 끼우게 한다!

   자 이제 오늘 설교 중에 우리 자신의 정곡을 찔렀던 그 말씀을 챙기자. 오늘 설교본문은 히스기야 왕의 통치일생을 총평한 말씀이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에서 1, 2위를 다투었다. 정통한 믿음중심 때문이었고, 사명 깨우치기에 정통했으며, 첫 단추를 올바로 끼웠기 때문이었다. 활용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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