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4일 설교

March 24, 2019

                                              “여호와 보시기에!” (대하 28:8-15 ‘행함이 있는 어른 믿음’) 19.3.24.

   아마존 강은 남아메리카북부의 안데스 산맥에서 시작하여 적도를 따라 동쪽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흐르는데 강 면적은 약 705만㎢에 이르러 세계의 강들 가운데 으뜸이고, 그 길이는 약 6,400km로 나일강에 이어 두 번째이며, 큰 지류의 강이 200개도 넘는단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바다로 흐르는 강물의 20%를 아마존 강이 담당하고 있단다. 그래도 아마존 강을 실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존 강은 강 하구에서 1,600km나 떨어진 마나우스까지 강폭이 16km 정도란다(40리 폭으로 4000리, 3000리 반도보다 1000리나 더 길음). 아무리 큰 배도 바다를 항해하는 최고속도로 달릴 수 있고, 육안으로 보아서는 바다에 떠 있는지 강에 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란다.

   성경도 마치 아마존 강과 닮았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이란 거대한 강줄기를 따라 언약성취와 계시에 참여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사건과 싸움과 산업을 반복하면서 역사적인 민족문화를 이루며 살아간 일들을 모아놓은 게 성경이다. 거기서 가장 큰 강줄기는 ‘예수님 대속’이라는 십자가 사건이다. 성경을 읽든 쓰든 예수님의 대속사건을 핵심으로 인식한 사람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사건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신다는 ‘사랑’의 최고 최대 최적의 증거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을 천국이라는 바다까지 안전하게 태워다 주는 구조선이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 예수님의 배에서 내리고 떠나 골짜기 강으로 올라가 예수님의 강으로 흘러가게 알리고 도와야 한다. 구원에는 실패한다는 불교이지만 살불살조(殺佛殺祖)라고 가르친다. ‘깨달음을 얻었으면 이제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죽여라’는 뜻이다. 중국의 당나라 말 승려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이 남긴 유명한 사자후(獅子吼)이었는데 죽이라는 말은 육체적 살인이 아니라 ‘우상’이나 탐애(貪愛)로 떠받드는 부처나 은사라면 없애라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이제는 예수님 꽁무니에만 붙어있으라는 임마누엘로 고집부리지 말고 예수님이 깨우치신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도록 예루살렘으로, 유다로,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떠나야 복된 믿음삶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임마누엘을 재물의 풍요로 착각했다가 선지자에게 낯 뜨겁게 책망당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8-10,11下). 우리 한국교회도 축복과 은혜를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로 등식화(等式化)시키는 실수를 많이 하곤 하지요.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분명하게 밝혀놓았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마 6:32). 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박해’는 예수님의 제자로 충성스럽게 살아가느라고 당하는 고난을 말함).

   주기철 목사님이 남긴 ‘고난묵상’에 관한 글이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해 이제 당하는 수옥을 내 피하였다가 주님이 ‘너는 내 이름으로 평안과 즐거움은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대답할 말로 믿음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교회 좀 다닌 교우라면 새롭게 들리는 내용은 별로 없겠지만 가슴을 치는 그날 그 자리는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주님께 대답할 수밖에 없는 그 길로 가면서도 특별히 그 자리를 피하는 축복이나 은혜를 받은 것처럼 살아가는 교인들이 많아지고 있어 큰일이다. 은혜로 교우 여러분, 자기 십자가는 설교용 구호가 아니라 사실이고 실제 삶이어야 하잖아요.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0억 원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범죄라도 저지를 용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나라 고등학생 절반 이상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충격이 아니라 환장할 일인데 왜 이 지경까지 되었나요? 어린 학생들이 보고 배운 탓이다. 국회의원 어른들이 범죄하고도 큰소리치는 것을 본 것이다. 장관으로 뽑힐 어른들이 범죄로 재산을 축적한 것을 보았던 것이다. 대법원장 어르신이나 대통령 할머니 할배가 범죄하고 거짓말로 잡아떼는 것을 보고 배운 것이다. 과정을 무시하고 성공이란 결과만 칭찬하는 사회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그리로 기울어지고 있음을 내보인 증거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바르게 얻은 것만이 오래 누릴 수 있는 열매이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속도보다 방향이 더 먼저이다. 그래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고 하나님이 이뤄주시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오늘 설교본문도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과감하게 버렸다고 기록해 놓았다(15).

   그러면 설교본문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의 믿음삶을 위한 답을 함께 찾아내자.

   1) 여호와께(10)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수록 언제 무슨 일이든지 물어야 할 질문이다. 저는 역지사지(易地思之; 易我思之 易汝思之 易神思之)라는 말로 여러 번 설교를 해 왔다. 집사님의 성공이라면 하나님께 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사님의 간증이라면 하나님께 정직해야 하고, 장로님의 승리라면 하나님께 떳떳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신 9:4-5).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롬 11:21-22).

   헨델이 질병과 파산으로 절망 속을 헤매다가 자기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삶의 애착심도 사라져갔다. 그럴 때 그는 성경책을 펼치고 이사야서를 읽었는데 53장 3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는 말씀을 읽을 때 주님의 십자가고통과 사랑이 온 몸에 전율되면서 벅찬 감동에 사로잡혔단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 통곡하다가, “오, 나의 고통과 나의 절망을 다 겪으신 주님, 과연 내 구세주십니다!”라고 외쳤더니, 아름다운 선율에 감동되었고 그것을 정리한 게 ‘메시아’라는 대곡이었단다. 하나님께 맞춰질 때 참이 되고, 아름다움이며, 축복인 것이다. 아멘.

   2) 듣고 하라(11)

   ‘너희는 내 말을 듣고 ...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좀 쉽게 정리하면 ‘선지자 오뎃이 전하는 말을 듣고 삶으로 순종하라. 그 순종은 여호와의 진노에 직결된다.’이다. 아직도 밝히 알아듣지 못해서 아멘을 못 하는데, 선지자 오뎃이 전하는 말을 오늘 날은 설교라고 한다. 설교를 삶으로 응답하는 일은 임박한 여호와의 진노를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덴마크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문학가 안데르센(1805-1875)이 청년 때 스웨덴 여류소설가 브레멘에게 지도를 받으려고 여객선을 타고 스웨덴으로 가는데, 우연히 그 배의 선장과 인사를 하고 대화 중에 “나는 유명한 소설가 브레멘 여사를 만나러 스웨덴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했더니, 그 선장이 혀를 차면서 “신문기사에 브레멘 여사는 외국 여행 중이던데 이 먼 곳까지 괜히 헛걸음만 했네요.” 라고 하더란다. 안데르센 역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한 시간쯤 후에 선장이 달려오면서 큰 소리로 “안데르센, 기적이 일어났네요. 당신이 만나려던 브레덴 여사가 바로 이 배에 타고 계시네요!” 안데르센은 브레덴과 같은 배를 타고도 그 사실을 몰라 세상 뉴스만 믿고 실망하였던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함께 계신다. 그러고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의와 심판과 죄에 대한 확신을 주고 계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보혜사(counsellor)로 계신다는 이 실제야말로 이 땅에서 최고로 귀하고 신령한 복이다. 따라 순종하면 베드로의 그물처럼 된다. 체험하게 되기를 축복한다. 아멘.

   3) 돌려줌(15)

   ‘그 형제에게 돌려준 후에’ ‘이십만 명’ 포로와 재물을 되돌려 준 일을 말한다. 빈손으로 됨이다. 그런데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13下. תאטח 하타트 to miss a aim, error, fall, idol. ‘우두머리’ ישׁארמ 메라아쉬 of the leaders, head. 알아차림). 승리(성공, 풍요)가 죄(תאטח 하타트 to miss a aim, fall, idol)일 수 있고, 빈손이 축복받을 회개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확신하게 되길 바란다.

   교회 찬양대지휘자 커크 패트릭(W. J. Kirkpatrick, 1838-1921)이 펜실베이니어 로린스빌 캠프에서 찬송을 인도하는데 매일 밤 한 청년이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독창을 했다. 하지만 청년은 불신자 직업가수였다. 커크 패트릭은 청년에게 간절히 전도해 보았지만 청년의 반응은 별로였다. 안타깝게 생각한 패트릭은 집회기간 동안 청년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온 밤을 새워 기도하는데 문득 찬송시가 떠올랐다. 그는 그 시를 정리하여 곡을 붙였다. 그리고 청년에게 독창을 부탁했다. 청년은 그 날 밤 패트릭이 만든 찬송을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이 찬송을 부르던 청년은 5절까지 다 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단다. 주님을 멀리 떠났다 이제 오는 주인공이 자기 자신임을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게 은혜이다. 저와 여러분도 주인공으로 찬송하게 되기를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가 보여준 신호등에 우리의 신앙 삶을 맞추자. 오늘 설교본문은 선지자 오뎃의 책망을 듣고 에브라임 용사들이 받아들인 장면인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맞추고, 책망 듣고 순종, 빈손 선택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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