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0일 설교

January 9, 2019

                                      “성취하는 개혁!” (대하 23:1-11 ‘제사장 여호야다의 개혁’) 18.12.30.

   어느 부자가 상속 받을 사람도 없는데 유언을 남기지 않은 채 별세하자, 남겨진 유물들을 경매에 붙였단다. 고인이 아끼던 소장품들을 살펴보고 있던 사람들 중에 값비싼 보석들에 시선을 빼앗긴 이들이 많았는데, 골동품 같은 가구들을 탐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허름한 차림으로 유품들을 둘러보던 한 할머니가 부자의 외아들 돌 기념사진을 사더란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그 사진을 할머니는 한참동안 지켜보더니 아주 싼 값으로 거저 얻다시피 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그 사진은 사서 뭐하시렵니까?” 그 할머니가 대답했다. “오래 전에 이 아이의 유모는 바로 나였습니다. 그때 나는 이 아이를 사랑하는 재미로 살았지요. 그래서 이 아이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즐기고 싶어서 이 사진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표구점에 들려서 그 돌 사진의 액자를 바꾸다가 사진 뒤에 붙어있는 봉투를 발견하게 됐다. 그 봉투는 놀랍게도 유서가 담겨 있었는데, 고인의 전 재산을 자기 외아들 사진을 간직하는 이에게 주라는 유서더란다.

   그렇다. 사랑함을 담고 있는 마음에 보물이 담기는 법이다. 하나님의 기적응답은 사랑과 정의와 겸손이 녹아있는 손길을 찾아와 나비처럼 짝을 이루는 법이다. 밤새껏 빈 그물질만 하던 베드로가 그랬었지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들은 하나님의 축복실현을, 많아지고 커지고 높아지는 것들과 대칭시키는 추세라서 돌 초상화를 구입하는 사람에게 상속을 유언했던 그 부자의 생각과 정반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

   오늘 설교본문도 한국교회라면 ‘정교분리’(정치와 교회의 분리)라는 생각으로 무관심하기 십상인 일인데도 치밀하게 준비하고 혼신을 다하여 추진하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일로 확신하는 제사장을 보게 한다(9-10. 지금 함께 읽은 말씀은 여호야다가 제사장 신분으로 아달랴 정권에 반역하는 일을 주동하는 장면임). 여호야다는 1절에 기록되어 있는 5명의 백부장들과 뜻을 같이하여 아달랴 왕권을 전복시키고, 대신 겨우 7살인 요아스를 새 임금님으로 복원하였는데, 설교본문은 1절부터 7절까지 치밀한 반역준비를 볼 수 있게 해 주고, 8절부터 11절까지는 반역 성공과정을 보게 한다. 그리고 12절부터 15절까지 아달랴를 처형함으로 반역의 후환을 없앴다고 밝혀놓았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아달랴 정권에 무섭게 반역한 것은 바알숭배자 아달랴가 다윗왕조를 강탈하여 6년 동안 본격적인 흑암정치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나라현실을 여호와 하나님의 건전한 신앙관으로 볼 때, 유다 나라는 꺼져가는 등불이었고, 제사장 여호야다는 침몰하는 유다를 하나님 앞으로 건져 올렸으니 애국충신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성탄절을 보내고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진정 기쁜 소식으로 감격하는 사람들을 봤나요? 동방박사들처럼 더러 지식인들도 연구실을 박차고 나와 기쁜 소식을 경배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하고, 그 대답도 진지하게 찾아보자는 것이다. 마태복음 1장2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성탄의 핵심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셔서 함께 살아가는 시대의 시작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32장에 소위 ‘금송아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出애굽을 시켜주었더니 급조한 금송아지가 출애굽을 시켰다고 예배하는, 어처구니없는 배신행위를 이스라엘 백성이 한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을 당장 진멸시키겠다고 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목숨을 걸고 중보기도를 드렸고 그 결과 진노는 집행유예로 바꾸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중대선언을 하셨다. 출 33:3에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부터 가나안까지 홀로 가라는 뜻이었다. 이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 또 반석에서 솟아난 샘물... 다 이제부터 스스로 해결하라고 갈라섰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아 된 외아들 같았겠지요. 그래서 출 33:4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임마누엘을 상실한 삶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실감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렇다. 오늘날 인생의 근본병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지 않는 삶에 있다. 하나님을 떠나 혼자 저 광야 인생길을 걷는 삶은 의식주라는 통장들을 자꾸 돌려막아 봐도 신용불량자로 몰리게 된다. 임마누엘 삶을 이어가는 게 지혜이고, 똑똑함이며, 진정한 성공인 것이다. 아멘. 사실상 아달랴와 여호야다는 장모사위 관계이었다(22:11). 그런데도 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의 정권을 요아스의 정권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그만큼 임마누엘을 중요하게 보았다는 실증이다.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여호야다를 좀 더 심도 있게 살펴보면서 바알신앙 사회를 여호와신앙 사회로 바로잡아가는 개혁신앙의 삶을 배우고 실행하여 보자.

   1) 용기(1)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백부장 곧’(התחזק  히트하자크 to show courageous. to become powerful. ‘Jehoiada strengthened himself, and made a covenant with’ -NKJV- ‘Jehoiada[the priest] took strength and courage and made a covenant with’ -Amf-. 제사장으로서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고 언약을 세웠다는 것임! 강조하는 게 함께 언약을 세운 사람보다 언약 자체를 생각하게 함! 옳다고 판단될 때 동참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면서 노력하는 모습임.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6- 27).

   그리스도인에게 누구나 쉽게 일어나는 기적이 세 가지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말씀을 읽어보지 않는 것,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전도를 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축복실현을 기대하는 것 이 세 가지라고 한다. 농담 같지만 현실적으로 흔하다. 자신이 멋있다고 흠모하는 사람과 막 사랑에 빠진 처녀를 떠올려 보자. 그녀는 어떻게 하든지 만날 거리를 만들고, 만나서, 함께 있고,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에 관해서 입을 다물고 있다면 아직 덜 반한 거다. 그 놀라운 은혜! 달콤한 복음!(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이라고 찬송하면서 은혜를 자랑하지 않는다면 진짜 화목제물인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한 게 맞을 거다. 아멘.

   제사장 여호야다는 자기 신앙관대로 생활해 갔다. 저희도 믿음을 생활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길 축복한다. 아멘.

    2) 언약(3)

   5백부장들과 레위족들과 지방족장들이 예루살렘의 하나님 성전에 집결하자, 제사장 여호야다는 함께 언약을 세운 후에, 곧바로 연설을 하였다. 다윗왕조를 계승시켜야 한다고. 그런데 그 당시의 왕 아달랴는 다윗왕조를 갈아치운 바알왕조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후 왕을 보내 아달랴의 아들 아하사야를 살해하게 하였고, 또 제사장 여호야다를 통해 아달랴 왕권을 쓸어버리게 했던 것이다. 여호야다가 이렇게 다윗왕조에 몰입한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었다(삼하 7:16).

   6.25 직후에 미국의 로터리클럽 회원들이 소록도 나병환자 수용소를 방문하였단다. 그 수용소에 미국에서 온 선교사 한 분이 간호사로 있었는데 그날 선교사가 나병 환자의 고름을 짜내며 상처를 간호하고 있었다. 방문객 중 한 사업가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말을 하더란다. “이 섬김은 백만 불짜리이다. 하지만 누가 백만 불을 주어도 난 이 일을 못할 겁니다.” 선교사 간호사님은 그 사업가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도 그 일을 못할 겁니다.” 그러자 사업가가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이런 고름을 짜고 있소?” 선교사가 대답하였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언약들도 암기된 지식으로 두뇌에 간직되어 있다면 계산적이고 차갑게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이 녹아 가슴에 고여 있는 성도는, 십자가 사랑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말씀을 뿌리면서 개혁에도 동참한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랬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축복한다. 아멘.

   3) 율법책(11)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세워 왕으로 삼을 새’ ; 7살 아이가 왕으로 즉위하는 자리에서 율법책을 받게 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특별한 의미를 두고 했던 일로 보인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신 17:18-20).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기억하고 철저하게 순종하는 모습이었다.

   메트로폴리탄 교회는 영국의 런던에 있었는데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던 교회였단다. 1866년에 소속 교우가 4,366명으로 그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로 알려져서 많은 목사님들이 부러워했단다. 어느 주일 설교시간에 스펄전 목사님이 교우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향하여 가슴이 뜨거운 사람 12명만 있다면, 이토록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의 런던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4,366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전부가 다 미지근한 교인들이라면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할 겁니다.”

   맞다. 성경의 가르침에 조종당하고 살아간 신앙인은 천국을 향해 노 저어 가면서 재림평점위주로 선택하고 충성한다. 저와 여러분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가는데 유능해 가길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 중에 우리 하나님이 특별하게 저희의 마음 밭에 뿌려둔 말씀들을 확인하여 보자. 핵심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개혁성공인데, 의도적인 용기 부림으로! 철저한 언약중시로! 평생 율법중시로! 해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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