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6일 설교

December 16, 2018

                                            “아하시아 왕의 비극!” (대하 22:1-7 ‘음부의 권세 해악’) 18.12.16.

   우리나라는 잦은 인재사고로 ‘안전 불감증’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 같은데 또 열차사고로 온 국민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 8일 강릉에서 서울로 시속 250㎞ 이상으로 운행하던 KTX 열차가 탈선하였다. 1차 조사결과 신호제어시스템의 오류가 사고원인으로 파악됐다. 열차 4량이 탈선하는 아찔한 사고였는데도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고 14명이 다쳤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안전불감증으로 기강해이, 총체적인 관리부실이 빚은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사고를 알리는 신호제어시스템이 잘못 작동되곤 하였는데도 이 사실을 알아낸 사람도, 검증체제도 없었다. 이렇게 된 데는 경비만 절감하려고 주요업무를 외부업자에게 주문하였고, 사고에 대한 예상은 안일한 태도로 설마 하였던 것이다. 사고발생 1시간이 지나도록 안내하는 승무원이나 안내방송도 없었던 것을 보면 사고대응에 대한 수습대책도 유명무실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열차사고를 좀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최근에 열차사고가 너무 빈번했다는 것이다. 같은 날 대구역에서 서울행 KTX 열차가 선로에서 30분가량 멈췄고, 지난달 19일에는 서울역에서 KTX가 선로 보수작업을 하던 굴착기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고, 22일 오후 5시 50분 지하철 분당선 열차가 복정역과 수서역 사이에서 고장 나 1시간 넘게 열차운행을 중단했고, 23일에는 충북 오송역에서 KTX열차 전기공급 중단으로 경부선 상·하행선 운행이 모두 중단되는 이해하기 힘든 사고도 터졌다. 28일 오전 9시 13분께 호남선 하남역 인근에서 도색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서울행 새마을호 열차에 치여 숨졌다.

   국회의원 출신이었던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사장취임 후에 남북철도와 SR과의 통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정치적 성과만 신경 쓰느라고 철도 안전운행이라는 기본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과 함께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사고가 사고를 부르는 법이다. 대형 참사는 발생하기 전에 경미한 고장이나 그 징후들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열차사고는 부품고장과 정비소홀, 제작결함 등등이 대부분의 원인라고 한다. 그렇다면 규정과 점검을 꼼꼼하게 하면 삽으로 막아야 할 인재사고를 호미로 막곤 한다는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청천벽력 같은 충격에 시달렸으리라고 짐작되는 인재를 기록해 놓은 말씀인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2. ‘사십이 세’ ‘일 년 동안’ = 42세 때 왕 자리에 올랐다가 43세에 살해당했음<9>,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왕하 8:26>. 22세가 사실이라면 더욱 날벼락이었겠지요.).

   아하시야 왕의 죽음을 안타까운 인재로 볼 밖에 없는 것은 아하시야 왕이 죽을 자리에 두 번이나 제 발로 찾아가서 살해당하였기 때문이다. 아하시야 왕이 죽을 자리로 찾아간 첫 번째는 아람 왕 하사엘과 함께 전투한 일이었고(5), 두 번째는 예후가 있는 곳으로 찾아간 것이었다(7). 하사엘과 예후를 만나는 일이 왜 자살행위에 해당할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왕상 19:15-17. 하사엘 왕과 예후 왕,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는 아합 왕의 가문을 3겹으로 포위하여 말살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실현 중이었음. 그런데도 아하시야 왕은 하사엘 왕과 더불어 싸우고 또 예후 왕을 만나고 하였으니, 고삐 풀린 망아지와 다를 게 없었음).

   미국에는 ‘아버지의 날’이 있다. 이 날이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남편의 회사를 방문하는 아내도 있단다. 아버지의 날이 되면 회사 측도 가족들에게 일자리를 개방하여, 남편들이 가족들을 위하여 직장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직접 지켜볼 수 있게 기꺼이 배려해 주는 것은, 남편의 직장을 다녀간 아내들은 어진간해서는 바가지를 긁지 않기 때문이란다. 반대로 ‘어머니의 날’이 되면 남편들에게 휴가를 주어, 각 가정에서 아내가 겪는 고충을 체험하도록 기회를 주는 회사도 있는데, 아내들이 집에서 도대체 무얼 하느냐고 남편들이 오해하는 것을 줄여주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다 보면, 행복한 부부생활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저 생각으로만 공감하다 말 게 아니라, 당장 삶에 반영하도록 역할을 바꿔보는 기회를 갖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느 부부는 열흘에 한 번씩 남편은 가사를 돕고 아내는 남편의 일을 거드는 방법으로 ‘부부 역할 십부제’를 만들어 실행하고 있단다.

   입장 바꿔보기는 오해나 착각, 고집확신을 깨닫고 고치게 하기 때문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찬성지지를 받아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하시야 왕은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기(易思之, 易思之, 易思之)를 소홀히 하다가 횡사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자 그러면 아하시야 왕을 좀 더 살펴보면서 횡사라는 인재를 예방시키는 대책을 함께 찾아보자.

   1) 어머니(3)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יעץ 야아츠 counsel, advise, instruct, plan, deliberate. 숙고, 검토. 부모치고 자식을 망하게 하는 경우는 없음. 또 ‘피는 물보다 진하다.’(‘母傳子傳’<父傳子傳 DNA가 전해진다는 법칙을 밝힌 말임>). 그럴지라도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라고 가르치셨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 12:50).

   어촌에서 고기잡이 사고로 남편을 잃고 아들 셋과 함께 청상과부로 살아가는 여인은, 남편 사고 때문에 세 아들에게 배를 타는 것은 엄금해 왔단다. 그런데 맏아들이 엄마의 명을 어기고 선원을 지원해서 어머니는 기를 쓰고 말렸지만 아들의 결심을 꺾지 못했는데, 그만 맏아들은 폭풍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 여인은 또 이를 악물게 되었다. 그런데도 둘째가 해병대에 지원했고, 막내아들은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어머니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둘째는 해상작전 중에 위험에 빠진 동료를 구하다 익사하였고, 막내도 해상훈련을 하다가 익사하였다.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로 밤을 새웠다. 그녀를 걱정하던 동네 사람들이 의사를 불렀다. 여인은 의사를 보자마자 신세타령을 하며 치료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의사는 마루문 위에 걸려있는 그림을 떼어내고 “이 그림 때문입니다. 아들들은 어려서부터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자랐기에 엄마가 아무리 말려도 끝내 바다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 그림은 파란 바다를 쏜살 같이 달리는 배가 멋지게 그려져 있었다.

   무엇을 쳐다보고 사느냐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족사진을 품고 다니는 사람은 1순위로 가족을 둔다. 매일 돈만 생각하는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부인은 남편이 출장을 갈 때마다 여행가방에 가족사진 액자를 넣어주면서 호텔 방 TV에 올려놓으라고 심신부탁을 한단다. ‘유혹을 막는 양심신경’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유혹들이 몰려드는데 우리는 어떤 그림을 보며 살아가야 할까?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하시야 왕은 아합의 집에 정조준하다 망했다.

   2) 싸우더니(5)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우더니’ 정답 힌트가 여러 가지이다(아합, 길으앗 라못, 아람... 18:1, 28, 30, 34, 19:2. 아하시야 왕의 할아버지 여호사밧 왕이 길으앗 라못에서 아람 왕을 상대로 아합과 연합전투하고 선지자 예후에게 혼났는데 또 그런 일을 그대로 반복했으니 철이 안 든 왕이든지, 아니면 정신 나간 왕이든지... 상식 밖이었음!).

   옛날에 걸을 수 없는 앉은뱅이가 있었다. 추운 겨울밤이면 얼어 죽지 않으려고 남의 집 굴뚝을 끌어않고 밤을 보냈고, 낮에는 돌아다니며 빌어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장터에서 구걸하는 맹인을 만났다. 동병상련의 아픔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울면서 같이 살기로 다짐했다. 맹인을 앉은뱅이가 업으면 길안내는 것은 앉은뱅이가 하고, 걷는 것은 맹인이 할 수 있어 서로의 약점을 해결하게 되었다. 맹인이 앉은뱅이를 엎고 장터에 나타났더니, 서로가 돕는 모습을 좋게 생각하던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었단다. 그러니 예전에 따로 살아갈 때 보다 훨씬 넉넉해졌지요.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은 마을 고갯길을 넘어가다가 맹인이 지쳐서 쓰러지는 바람에 두 사람 모두 절벽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단다. 앉은뱅이가 좋은 음식만 골라먹고 부실한 음식을 맹인에게 먹게 하다 보니, 앉은뱅이는 점점 뚱뚱해지고 반대로 맹인은 점점 허약해져 갔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자녀 삶도 마찬가지이다. 똑똑하고 판단을 잘하지만 주변을 배려하지 않고 혼자만 배를 채우려고 욕심을 부리면 앉은뱅이처럼 기본상식도 보이지 않아 결국 같이 죽게 된다. 아하시야 왕이 그랬다. 자주 생각나길 축복한다. 아멘. 

   3) 방문(6-7)

   ‘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입었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아하시야 왕의 소견대로 하면 이해되는 이유가 많았겠지요. 요람은 외삼촌이고, 어머니가 곁에서 ‘꾀어’(יעץ 야아츠 counsel, advise, instruct, plan, deliberate. 숙고, 검토)대고, 또 함께 전투하다 다쳐서 투병 중... 하지만 이런 관  심은 인간적으로 친절이나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순종임! 이 저울을 소유하길!).

    오늘 아침 새벽기도시간에 봤던 말씀은 누가복음 1장 20절이었다(‘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가브리엘 천사가 제사장 사가랴에게 한 말임. 사가랴는 모범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음<5-18. 제사장 가문, 의인, 흠 없이 순종, 차례대로 직무를 행함, 기도생활 함... 그런데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도응답에는 못 미쳤음! 그래서 벙어리 만들어 놓고 기도응답 해 주셨다고. 왜? 아멘 못해서<1:18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 거짓말 아님, 게으름도, 엄살 부리는 핑계도 아님, 현실이고 실제 사실임. 다만 하나님을 +시키지 않았을 뿐인데 이게 바로 ‘믿지 아니함’임!>. 사가랴의 벙어리 됨이 저와 여러분의 믿음생활에서 저울이길 축복함).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 중에 저와 여러분의 믿음 생활에서 신호등 역할로 주신 말씀을 찾아보자. 오늘 설교는 아하시야 왕이 임금 즉위 1년 만에 당한 횡사 장면이었는데, 인재이었다. 어머니의 꾐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반복 때문에! 인간적인 친절을 앞세운 불순종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믿음생활에서 해답되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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