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9일 설교

December 9, 2018

                             “큰 재앙으로 치시리라!” (대하 21:11-20 ‘여호람 왕의 죽음’) 18.12.9.

   2007년 3월1일자 국민일보에 앞길이 보장된 검사의 길을 가다가 갑자기 그만둔 기사가 실렸다. 그 검사는 25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포항지청장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법조인으로 살아왔던 김우경 검사이었다. 그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자주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방황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마음에 승복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저 젊은이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할 일이 있을 텐데.....’ 그러고 그는 지금까지 검사의 삶을 되새겨 보았단다. 매일같이 사람을 죄인으로 추궁하고 죄의 올가미를 씌워 판사에 넘기는 그 일에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또 인도하는 일을 해보려고, 소위 출세했다는 그 검사직을 끝내 버렸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출세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인맥과 재력을 동원하는 실정인데, 김우경 검사는 다른 판단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젊은이들을 위한 도우미로 변신을 하였다. 김우경 검사가 가던 길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봤기 때문이었다. 가끔 말하지만 이러한 고민을 ‘긍정적’, ‘소망적’, ‘창조적’이라 하고 값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민을 회피하고,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부자이고 권세자라도 불행한 사람이고 말 못하고 쫓기는 금수(禽獸)수준인 것이다. 가시밭 환경에서 살아갈지라도 심판대에서 영생복락의 길을 허락받을 수 있다면 그 분은 충분히 ‘긍정적’이고, ‘소망적’이며, ‘창조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비록 병든 자식 때문에 눈물 마를 날이 없고, 속 썩이는 남편 때문에 동창회에 나가는 것도 부담되고 설령 참석한 들 고개를 들지 못할지라도, 기도와 감사와 기다림을 이어간다면 알곡 신앙인이다. 심판대를 주신 하나님을 확신하고 기다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복 받은 천국시민인 것이다. 우리가 대충 속단해서 그렇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자신의 가난함, 실패, 병세까지도 부러워하는 권세자들은 많다. 

    오늘 설교본문에도 여호람 왕은 우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한 인생마감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19-20. 황제폐하께서 별세하셨는데 ‘분향’도 없었고, ‘아끼는 자 없이’ 그래서 열왕의 묘실에 장사하지 않았다는 것임. ‘아끼는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חמד  하마드 desire, delight in, pleasant. ‘departed without being wanted’-Amf- ‘to no one’s sorrow’-NKJV- ‘Nobody was sorry when he died.’-GN-. 우리 옛 선조들은 임금의 죽음을 사<死>나 몰<歿>, 망<亡>으로 표현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붕어’<崩御 royal이 무너짐>, ‘천붕’<天崩 하늘이 무너짐>, ‘승하’<昇遐 먼 길로 올랐다>, ‘빈천’<賓天 하늘 손님>... 크나큰 슬픔을 당하였음을 대단한 은유법으로 표현하였음. 이러한 사고방식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봐도 다 어느 정도는 공통적이었음. 그렇다면 여호람 왕은 얼마나 천하고 천한 죽음을 당하였는지 가늠하는데 조금도 어렵지 않음). 

   그러면 여호람 왕은 왜 그토록 안타까운 죽음을 당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음행하게’ 하는 죄악 때문이었다(יזן 예젠 זנה 자나<to commit whoredom, play the harlot, idolatry>의 히필형<사역, 시킴;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부부로 보고 음행을 말하는 곳도 많다(렘 3:6, 9). 여호람 왕은 자신이 아닌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을 음행하게 시켰다는 것임<13>. = 자기 혼자만 음행한 게 아니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컸음<14>.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마 23:13>). 

   인간이 자기의사를 전달할 때 듣는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생명의 언어’와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살인의 언어’를 섞어서 표현한단다. 물론 생명의 언어가 듣는 사람에게 좋은 반응을 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말을 들어보면 살인의 언어도 많다는 것이다. 언어학회의 통계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루에 주고받는 말 가운데 소망적인 언어는 3~5개 정도이고, 비관적인 언어는 9배에 가까운 27.5개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현대인들은 무의식중에 비관적인 언어들에 길들여져 있는 게 분명하다. “아이고, 바빠 죽겠다.” “아이고, 지루해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 삶도 마찬가지이다. 영혼을 시들게 하는 일이 있고 영혼을 살리는 일이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알아보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분명히 영혼을 살린다.

   어느 교수님이 말하기를 “모든 여자들이 아무 시험도 치르지 않고 무료로 입학했다가 너나없이 공동수석으로 졸업하는 대학이 있는데, 그게 바로 ‘바가지대학’이다.”라고 했단다. 하지만 아내들이 일부러 바가지를 긁어가며 남편의 자존심을 꺾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는 실제 이유는 아내들이 남편의 기를 살릴 수 있는 말을 제대로 배우고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 삶도 똑같다. 그러면 여호람 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우리가 익혀야 할 것을 함께 찾아보자.

   1) 엘리야(12)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생각을 전하는 사람을 구약성경 용어로 (נבי 나비 ‘預言者’)라고 하고, 예언자가 전하는 글을 ‘예언’ 또는 복음(‘福音’)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사람의 이름을 붙여서 마태복음 누가복음처럼 부른다면 ‘엘리야복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여호람 왕은 엘리야복음을 받아 듣고, 읽고, 보관하였을지라도 진정 복음을 반영하지 않다가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죽음으로 끝났다. 복음을 듣거나 읽고 난 다음에 반영하는 게 그렇게 필수이고 중요하며 큰일이라는 것이다.

    미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실책을 기록한 선수는 찰스 힉맨이란다. 그는 한 해 동안 120게임에 출전하여 91번의 실책을 범했는데, 수준급 선수들이 한 해에 기록하는 5~7개의 실책에 비하면 대충 15배나 되는 부끄러운 기록이다. 그런데 힉맨은 땅볼을 받을 때 무릎을 충분히 굽히지 않고 그냥 쉽게 받는 습관 때문에 ‘피아노 다리’라는 별명까지 달고 다녔다. 그럴 때 여러 전문가가 힉맨에게 무릎을 낮게 굽히는 자세로 바꾸라고 지적했지만, 그는 계속 고집을 부리더니 결국 역사상 가장 많은 실책을 한 선수라는 안타까움을 남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릎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기도한다’는 말로 통한다. 무릎 꿇기를 싫어하여 뻣뻣한 무릎으로 하나님의 자녀 생활을 해 가면 힉맨처럼 실책으로 1등하는 인생을 마치게 된다. 저와 여러분은 무릎 꿇는 믿음생활에 익숙해지기를 축복한다. 그리하면 반드시 축복의 몫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멘.

   2) 블레셋(16)

   ‘블레셋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 격동하여... 치게’ 여호람 왕국의 이웃 불신국가들이 일으킨 전쟁에 패배하고 약탈과 포로로 피눈물을 흘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시 119:71-72). 하나님의 자녀가 피눈물 나는 고통을 당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특권기회라는 것이다. ‘천천 금은보다 좋은’ 하나님의 율례들을 배우게 하는 믿음훈련소로 하나님이 삼으시기 때문이다. 여호람 왕은 이 이치를 몰라 전화위복을 놓치고 개죽음으로 일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TV프로그램 부부 퀴즈 쇼에 출연했다. 할머니가 문제를 설명하고 할아버지가 답을 많이 맞히면 상을 타는 그런 게임이었다. 정답은 ‘주차금지’이었는데 할머니가 “차를 여기다 세우면 안 된다는 것을 네 글자로 하면?”하고 설명하니까, 할아버지가 얼른 대답했다. “대지마라” 할머니가 “그거 말고 다른 말로 하면?” 할아버지가 “딴 데 대라”...

   상대의 마음을 딱 알아준다는 게 이토록 어렵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도록 부부관계로 함께 살았지만 상대방의 생각을 읽어내는데 자꾸 틀린 것만 보아도 마음속을 읽는다는 게 그만큼 복잡하다. 조급하게 서두르다 대충하면 십중팔구 빗나가게 된다. 고난훈련소 시절이 시작되면 차분하게 되씹으면서 하나씩 바로잡으면 다시 축복의 통로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체험하길 축복한다. 아멘.

   3) 고치지 못할 병(18)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 ‘고치지 못할 병’이란 말씀을 잘 알아차리는 게 성경을 잘 읽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고치지 못할 병’은 세계최고의 명의라도, 만병통치의 약이나 의술도 못 통한다는 것이다. 치료법은 딱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여호람 왕은 이 희한한 병에 걸려들어서 2년 동안 투병하다가 결국 죽었다. ‘이 년 만에’ 창자가 빠져나와 죽었다고 하였다.

   “이 차는 운전법규를 준수합니다.” “이 차는 난폭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문구를 버스에 붙어있는 것을 종종 보았을 거다. 어떻게든 운전기사들의 난폭운전을 막아보려고 버스회사가 생각해낸 고육지책이다. 그까짓 문구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 싶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도움을 준단다. 이런 문구가 위반을 꺼림칙하게 하는 ‘거울 효과’(mirror effect)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부인이 ‘남편 면허증’을 만들었는데, ‘남편 면허증’(husband’s license)이라고 쓰고 야외촬영한 가족사진을 붙이고 그 뒷면에는 다섯 가지 면허조건을 적었는데; 첫째, 남편의 최우선 순위는 가정이다. 둘째, 아내를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아내와 의논한다. 셋째, 부인을 다른 여자와 비교하지 않는다. 넷째, 아내를 내 기대치에 억지로 짜 맞추지 않는다. 다섯째, 부인을 위해 중보기도 한다. 남편 면허증은 공식기관에서 발행한 게 아니고, 일정기간 교육도 받지 않으며, 단속하는 경찰도 없다. 다만 ‘거울 효과’(mirror effect)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십계명 면허증을 만들어 ‘거울 효과’(mirror effect)를 보면 ‘고치지 못할 병’ 단계는 예방할 수 있게 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가 가리키는 믿음푯대를 다시 확인해 보자. 그것은 여호람 왕 일생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분향도 없이, 아끼는 사람도 없이, 열왕의 묘실에도 거절당했다. 그 이유는 음행하게 한 죄 때문이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러한 여호람 왕을 용서시키시려고 엘리야 복음을 보냈고, 전쟁을 당하게 하셨고, 고치지 못할 병에 걸리게 하셨다. 다 ‘여호와께서’ 하셨다고 기록되어있다(12,16,18). 그러나 여호람왕은 그 기회를 거절하고 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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