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11월 4일 설교
“주께서 함께 하시게!” (대하 19:4-11 ‘여호사밧 왕의 회개’) 18.11.4.
독일의 수학자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1.23~1943.2.14)는 33세에 괴팅겐대학교 수학교수로 옮긴 후에 그곳에서 교수로써 35년을 보냈단다. 그 동안 그의 명성을 듣고 괴팅겐대학교의 수학연구소에 전 세계에서 수많은 학생들과 방문객들이 몰려왔는데 그는 그 유명세와 상관없이 언제나 수학에만 몰두하는 학자로 살아갔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 그가 구멍 난 바지를 입고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강의시간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구멍 뚫린 그 옷을 입고 강의를 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수님이 바지에 구멍이 뚫린 것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강의시간에 그 사실을 교수님께 말씀 드리는 게 실례일 것 같아서, 차일피일 넘기면서 적당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힐베르트 교수님이 강의를 끝내고 길을 걸어가다가 지나가는 트럭과 살짝 부딪치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며 걷느라 미처 트럭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목격한 학생들이 급히 달려와 교수님을 부축하고 도우며 살펴보았더니 다친 데는 별로 없어서 모두들 안심하였다. 바로 그때 한 학생이 교수님의 바지에 구멍 뚫린 사실을 알려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말했다. “교수님, 바지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트럭에 부딪쳐서 생긴 모양입니다.” 그러자 힐베르트 교수가 “어디에? 구멍 뚫린 데가 어디지?”하며 몹시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바지를 내려다보면서 양손으로 더듬더니 “이 구멍 말인가? 아, 이건 지난 학기부터 있었어.”라고 하더란다. 그러고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옷을 털고 다시 가던 길을 가면서 생각에 잠기더란다. 이런 식으로 힐베르트 교수는 일생동안 수학연구에만 몰두하고 일체 한눈을 팔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눈을 팔지 않는 삶은 꼭 수학연구에만 필요한 게 아니지요. 모든 인생살이에서 다 그렇고 특히 하나님의 자녀 삶에도 필요하고 중요하기는 아무리 강조한들 조금도 실수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설교본문을 조용히 읽고 있으면 ‘집중’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10 ‘어떤 송사든지 그들에게 경고하여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여 너희와 너희 형제에게 진노하심이 임하지 않게 하라’ זהר 자할 warn, teach, enlighten, shine. 송사재판은 대부분 속상하기 마련인데, 송사를 통하여 오히려 깨닫고 계몽되어 문명화되게 하라는 것. 흑암이 빛<光>으로, 어두운 슬픔이 밝은 웃음으로 바꿔지게 하는 일을 말함!).
이렇게 경고를 잘 결실되게 하는 송사제도는 여호사밧 왕이 새롭게 시도하는 국가정책이었는데, 이것은 여호사밧 왕이 북측 이스라엘의 불신앙 괴수 아합 왕과 혼인동맹을 맺고, 또 연합군 전투에 참전하여 완패한 후에 귀국하여 환궁하는 도중에, 선견자 예후에게 혼나면서 들었던 책망과 권고를 반영하여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면서 결단한 정책이었다. 요즘 우리의 처지와 연관시키면 설교반영으로 180도로 달라진 회개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의 유명한 배우 저우룬파(周潤發 63)가 지난달 12일 인터뷰에서 “전 재산인 56억 홍콩달러(약 8100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단다. 저우룬파는 한 달 용돈으로 800홍콩달러(약 11만 원)를 쓰고 대중교통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과거 노키아 휴대전화를 17년 동안 쓰는 등 검소한 생활로 모은 재산인 게 밝혀지면서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유명인사 중에 이렇게 기부를 하고 사는 이들이 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미국의 마크 저커버그(34)는 2015년 페이스북 주식의 99%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고, 1조 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홍콩출신 스타 청룽(64)은 “죽을 때 통장 잔고가 0원이어야 한다.”면서 2014년, 전 재산 기부 의지를 밝혔단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미국의 빌 게이츠(63)는 2011년, “세 자녀에게 1000만 달러씩 물려주고 나머지 전 재산은 자선사업에 쓰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지난달 25일 김영석(91) 할아버지와 부인 양영애(83) 할머니가 종로에서 과일장사로 평생 모은 400억 원을 고려대에 기부하여 화제가 됐다. 이 부부도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1시간 거리는 걸어 다니고 20년 된 옷을 입을 정도로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삶을 살았는데 양씨 할머니는 “평생 구두쇠 소리를 듣던 내가 인재를 기르는 데 보탬이 돼 기쁘다”라고 말했단다.
그런데 김영석 양영애 부부 노인은 저우룬파나 빌 게이츠처럼 유명한 대 갑부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역설적으로 한국사회에도 부와 명성을 모두 가진 유명인 재산가는 많다. 그렇지만 기부한 부호는 거의 없는 편이다. 오히려 한국의 부자들은 재벌들을 자녀에게 세습하고도 탈세를 일삼는 데 집착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이러한 딱한 모습이 교회에까지 물들어져 있는 실정이다.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믿음색깔(신앙노선)을 위하여 여호사밧 왕의 개혁정책을 좀 더 치밀하게 들여다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가르침을 함께 찾아보자.
1) 여호와께로(5)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 여호사밧 왕이 선견자 예후에게 된통 혼난 후에 달라진 모습을 기록한 말씀이다. 그런데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두루 다니며’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유다나라의 최남단이 브엘세바였고 최북단은 에브라임산지이었다. 그렇다면 제주에서 임진가각까지 전국을 누비고 다녔음을 가리킨다(‘he went out again’ -NKJV- 자주 민정시찰을 나갔던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예후의 권면이었던 3절의 ‘찾음’에 일치하는 모습임! 우리 하나님이 보실 때 올바른 하나님의 지식을 따른 열심이요 회개이었음. 저와 여러분이 이런 것을 배우고 실행해야 성경을 잘 읽는 것이고 설교를 잘 듣는 것임!).
전에 시각장애인 윤인수 목사의 가슴 저리는 간증을 다큐멘타리로 방송된 적이 있었다. 중병으로 누워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어린 소년 윤인수가 길거리에서 신문을 팔고 구두 닦기를 시작했는데, 앞을 보지 못하는 윤인수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인수는 열심히 번 돈을 가지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그 돈을 내밀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십일조를 떼자 인수는 버럭 신경질을 부렸다. “십일조는 왜 하시려고요? 하나님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뭔데... 나의 눈은 멀게 했고 가족은 공산당에게 쫓겨 피난민 신세가 되게 했고 재산도 다 빼앗기고 엄마는 병들게 했고 그런 하나님께 무슨 십일조를 내려고 하느냐?”라며 항변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병들어 힘없는 두 손으로 어린 아들의 손목을 꼬옥 쥔 다음에 “인수야 고향 잃어버린 것도 한스럽고 집을 빼앗긴 것도 원통하고 건강도 서러운데 하나님마저 떠나보내서 믿음까지 상실하면 뭐가 남겠니?”라고 말했단다.
가난! 가난! 해도 믿음가난만은 예방하자는 것이었다. 맞다! 믿음회복이 현명함의 지름길이요 급선무인 것을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두길 축복한다. 아멘.
2) 재판관(6)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이지를 잘 살피라’(ראה to see, visit, live, observe, experience, perceive, choose. 신중! 엄중! 주도면밀! → ראה 노에 prophet). 주도면밀 하여야할 내용은 9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진실’(אמונה 에무나 → אמן 아멘 steadiness, truth, faithful)과 ‘성실’( שׁלם 살렘 whole, perfect, complete, full. → שׁלום 살롬) ‘경외’(ירא 야레 fear, afraid, anxious, reverencing, honour, awful, wonderful)이었다. 모든 재판은 속 내용이 하나님과 일치하게 하라는 것이었다(‘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북유럽 나라들의 육아법이다.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다른 이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여기지 마라. 남들보다 더 낫다고 믿지 마라.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지 마라. 뭐든지 잘한다고 여기지 마라. 남들을 비웃지 마라. 남들이 당신에게 신경 쓴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을 가르치려 들지 마라.”
오늘 날 다툼뉴스가 쏟아지는 것은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소위 ‘묻지 마 살해’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별 희한한 ‘조현증 진단서’를 첨부하면서 형량을 줄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기죽지 말라고 키운 아이들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닐까요? 성경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라고 가르친다(빌 2:3). 남을 낫게 여기면 쉽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고, 남을 낫게 여기면 애쓰지 않아도 인자를 사랑하게 되고, 남을 낫게 여기면 겸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저와 여러분이라도 진실과 성심과 경외를 조화시키는 재판관처럼 신앙생활을 하는데 익숙하길!
3) 함께(11)
지금 함께 읽은 말씀을 요약하면 ‘제사장과 어른과 관리가 협력을 잘하라’이다(‘힘써’ חזק 하자크 strong, firm, powerful, heal, restore ‘고쳐지고 회복되며 좋아지게’를 강하게 힘써 하는 것임! = 재판관들도, 행정공무원들도, 지방 유지들도, 종교지도자들도 모두!). 여호사밧 왕은 선견자 예후의 책망설교를 듣고 온통 나라가 고쳐지게 하였다는 것인데 이게 ‘명품 순종’인 것이다. 아멘!!!
어느 마을에 신실하고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자매가 교회생활에 열심이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여러 혼처를 거부하고 같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 넷을 두고, 성품도 좋지 않은 홀아비와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후처로 결혼하였다. 결혼생활은 자매가 살아온 환경과 너무 달랐다.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였겠지요. 자녀들의 반항, 남편의 술주정과 방탕함은 수없이 반복되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도로 밀고나갔다. 결국 네 아이들이 새 엄마를 받아들이고 주일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남편도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다. 그 남편은 세례를 받고 집사님이 되더니 아무래도 소명을 따라가야 하겠다며 신학교에 가더란다. 그 자매는 선교사 사명을 가지고 그 가정으로 시집을 간 것이다. 이런 결혼은 성경이 대치로 장려하는 결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결혼은 믿는 자와 하는 것이고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금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자매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가정구원에 순종한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고쳐지게 살아가는 일에 동참하길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를 들었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여호사밧 왕은 참으로 속상한 설교를 들었지만 신앙개혁정책을 철저하게 시도하였다. 재판관들을 세우고 온 나라가 협력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다. 자주 생각나길 축복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