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4일 설교

October 14, 2018

                              “시드기야를 알아보자!” (대하 18:18-27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 18.10.14.

   어느 연립주택에 불이 났는데 다행히 소방차가 빨리 와서 수습하는 바람에 쉽게 진화되었단다. 그러나 아직도 건물의 유리창으로 연기는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소방관들은 잠시 안심하는 눈으로 상황을 더 살피고 있었다. 그때 불을 피해 허겁지겁 나와 있던 할머니가 발을 동동 구르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안에 내 친구가 있는데... 소방관아저씨, 꼭 좀 구해주세요.” “친구라고요?” “그래요. 내 친구 강아지!”

   아무리 규모가 작다고 해도 화재현장은 예상하지 못한 위험들이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해서 사고를 예측하기는 어렵고 조심을 해야 했다. 그런데도 할머니가 하도 애통해하니까 청년 소방관이 개를 구하려고 다시 불났던 집으로 들어갔단다. 다행히 소방관은 안방 귀퉁이에서 물에 흠뻑 젖어서 떨고 있는 갈색 강아지 한 마리를 찾아내고 집 밖으로 무사히 안고 나왔다. 소방관이 할머니에게 강아지를 건네주자, 어디선가 큰 개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며 다가오더니, 연기로 까매진 소방관의 얼굴을 혀로 핥더란다. 그 커다란 개는 소방관이 구해준 바로 그 강아지의 어미 개였단다.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사회에서, 작고 병약한 개체들은 그냥 냉정하게 도태 당한다. 하지만 그렇게 냉정한 야생동물의 세계에도 어미만큼은 자신의 허약한 새끼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생명의 본능을 크기별로 잴 수 있을까요? 어느 동물이든지 자기새끼를 사랑하는 본능은 막강하다. 특히 개는 새끼뿐만 아니라 주인의 은택에 대하여 충성으로 보답하는 동물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개보다는 낫게 충성으로 보답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오늘 설교본문을 읽고 오신 분들은 벌써 알고 계시겠지만, 선지자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음을 본문에 잘 나타나 있다. 지금 같이 확인해 보자(22). 지금 함께 읽어본 말씀은 ‘거짓말하는 영’에게 말씀을 받아 전하는 선지자들이 있고, 또 여호와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선지자가 있음을 볼 수 있게 한다. 한 마디로 가짜와 진짜, 즉 거짓말 설교와 참말 설교이지요. 설교본문에는 거짓말 설교자가 ‘시드기야’이고 참말설교자는 ‘미가야’로 기록되어 있다.

   ‘꾀겠나이다’(20,19,21. פתה 파타아 to open wide, simple, persuaded<easily>, deceive, folly, inexperience. 단순하게 하니까 참 쉽고 좋은데, 경험한 게 아닌, 경험할 수 없는, 그래서 속는 것! 마귀 짓이요, 거짓 선지자요, 삯꾼 목자라는 것임.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들에게 그 말이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그들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19.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 도다.’ 겔 13:6-7, 19).

   남극의 매서운 칼바람 속에도 알과 새끼를 지키는 펭귄의 모성애와 부성애는 눈물겹도록 우리의 가슴을 울려준다. 엄마펭귄이 알을 낳자마자 아빠펭귄이 알을 품는다. 알을 품고 있는 아빠펭귄의 다리를 보면 아주 짧다. 아빠펭귄은 그 짧은 다리 사이에 알을 품고 행여나 알이 차가운 눈바람에 노출될까봐 그 짧은 다리사이에 알을 품고 강추위를 견뎌내면서 새끼펭귄이 태어나기를 기린단다. 눈보라는 자그마치 영하 40~60도로 차갑다. 조금만 잘못해도 알은 한 순간에 그대로 얼어버린다. 아빠펭귄은 그렇게 혹한을 이겨내며 무려 넉 달 동안을 먹지도 않고 알을 품고 있단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부성애이다.

   가시고기도 비슷하다. 암컷은 알을 낳고 죽으면, 수컷이 그 알을 지키느라고 알 주위를 떠나지 않고 먹지도 않고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지느러미를 쉴 새 없이 움직여 공기를 순환시켜 부화하게 하는데, 적들과 싸워 물리치느라고 잠시 쉬지도 못하다가, 자신의 살점을 새끼들이 뜯어먹게 하고 서서히 죽어간단다. 동물이지만 참으로 숨을 죽이게 한다.

   아빠펭귄과 가시고기의 부성애가 눈물겨운 감탄을 시키지만 인간의 부성애도 대단하다. 엄마의 몫으로만 알았던 집안 살림이나 육아를, 요즘에는 부성애로 모성애 못지않게 해내는 게 확산되고 있음을 가끔 TV방송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사람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짜 선지자로, 참 설교자로, 선한 목자로 충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그리스도인 삶을 진짜답게 해가기 위하여 다시 설교본문을 살펴보면서 정답을 함께 찾아보자.

   1) 뺨을 치며(23)

   저랑 같이 읽어본 말씀은 거짓 선지자의 우두머리였던 시드기야의 특성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폭력적인 방법이다(‘뺨을 치며’).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는 자신의 설교와 상반되게 전하는 미가야에게 폭력으로 맞섰다. 성경은 이러한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사 50:5-6).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 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기를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 15.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 도다.’(렘 28:12-13, 15).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마 26:67)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1-52).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 1919~2008)라는 영국의 청년은 1944년 전신 40%의 화상으로 전역한 후에 정식 등반교육을 받고 전문 산악활동을 시작했는데,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 산 정복을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내려오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단다. “산아, 너는 자라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라날 것이다. 나의 기술도, 나의 힘도, 나의 경험도, 나의 장비도 자라날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기어이 네 정상에 설 것이다.” 그는 약 10년 후 1953년 5월 29일 역사상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랐단다.

   이렇게 진짜는 실패를 딛고 일어나서 정당한 실력으로 승리하며 전진해 나가는 법이다. 힐러리는 에베르스트 산 지역에 사는 셰르파족을 위해 학교와 병원, 비행장 등을 건설했단다. 저와 여러분도 감동으로, 자원으로, 기도응답으로 우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이기를 축복한다. 아멘.

   2) 그 날(24)

   미가야 선지자는 아합 왕에 대한 재앙을 전하고, 그래서 아합 왕에게 거짓으로 듣기 좋게 설교한 시드기야는 골방으로 숨는 바로 그날을 보게 된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날은 하나님의 언약인 말씀성취이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긍정적’을 똑바로 볼 수 있다.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 18:21-22).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80세 생일잔치 자리에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난 허황된 계획을 꾸민 적도 있었고, 실현 불가능한 꿈을 가진 때도 있었소. 하지만 아내는 한 번도 불평을 하거나 의심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항상 나를 믿어주었답니다.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렇게 나를 믿어준 아내의 덕입니다. 그리고 그게 나의 가장 큰 기쁨이지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자신감을 갖게 한다. 우리가 한없이 부족하지만 언제나 믿어주고 그날까지 기다려주시는 분이 계신다. 그 사실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위로받게 된다. 체험하기를 축복한다. 아멘.

   3) 고난(26)

   선지자 미가야가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재앙을 전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는 장면이다.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설교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선 겉으로 보면 부정적인 설교이었고, 400:1, 왕에게 늘 왕따를 당해서 인기도 없는 미가야이었다. 그런데도 미가야가 참이었는데, 감옥에 갇힌다.

    예레미야를 보자.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8-9),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1-3),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38:6).

   농부들은 초봄에 아직도 추운데 못자리를 만들어 볍씨를 뿌린다. 그 볍씨들은 못자리에서 한동안 자라고, 농부들은 못자리에서 모를 뽑아 논에 옮겨 심는다. 모는 논에서 무럭무럭 자라 벼가 된다.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내놓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초신자 때는 목사님이나 구역장의 양육을 받고 자란다. 그러다가 모내기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옮겨 심어져야 한다. 그러한 후에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게 된다. 고난을 이겨내고 결실을 해내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인 것이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의 핵심뼈대를 간추리자. 오늘설교는 아합 왕과 여호사밧 왕이 출전을 앞두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미가야는 재앙을, 시드기야와 400명은 승리를 알렸다. 여기에 참과 거짓이 같이 있었다. 하지만 시드기야는 폭력으로 하였고, 미가야는 언약성취와 고난을 감수하면서 하였다. 저와 여러분이 분별하는 저울이요 정답 되기를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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