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3일

September 24, 2018

                                 “패배가 생기는 이유?” (대하 16:1-10 ‘아사 왕과 아람 왕의 동맹’) 18.9.23.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장터 길가에 떨어진 가방을 주웠는데 그 가방 안에 누구든지 욕심을 부릴 만큼 거금이 들어있더란다. 젊은이는 돈 가방을 들고 일단 주변을 살피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가방을 바닥에 툭 던져놓고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아 한가롭게 햇볕을 쬐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그 젊은이는 따스한 햇볕에 졸기 시작했는데, 눈에 불을 켜고 젊은이 주변을 살피는 사람이 있었다. 젊은이가 그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있으신가요?” “내가 가방을 분실했는데 아무래도 여기쯤인 것 같은데...” 그러자 젊은이는 깔고 앉은 돈 가방을 그 사람에게 던지며 말했다. “당신이 찾고자 하는 가방이 이거 아닌가요?” 그 사람은 가방을 보고 깜짝 놀라 어찌나 고마운지 젊은이에게 사례를 톡톡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젊은이는 딱 잘라 말했다. “돈을 가지고 싶었으면 그 가방을 들고 벌써 달아났을 겁니다. 돈은 필요한 사람이 요긴하게 잘 써야지요.”

   이 젊은이가 바로 우리나라 독립선언서 주창자 33인 민족대표 중 한 분인 손병희 선생님이셨다. 정직한 삶은 마치 건축하는 집에 비유할 수 있다. 집을 지을 때 속임수를 써가며 건축한다면 빨리 종결하겠지만 결국 후회막심한 날을 당하고 말 것이다. 안전한 저택을 짓고 그 집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무엇보다도 설계대로 정직하게 건축을 해가야 한다. 그렇게 지어낸 저택은 험난한 세월을 보낼수록 보람과 가치를 더욱 실감하게 되는 법이다.

   지금 제가 말한 정직한 건축은 오늘 설교본문을 조금만 생각하면서 읽어봐도 쉽게 공감하게 될 건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 먼저 3절을 함께 읽어보자. ‘약조를 깨뜨려’ 이 말씀은 아사 왕이 아람 왕 벤하닷에게 배신하라고 충동시키는 말이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은금을 대가로 주면서! (2.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 = ‘그의 아버지가 구별한 것과 자기가 구별한’<15:18>). 그렇다면 어마어마한 의미와 가치, 보람까지 신앙적으로! 가보적(家寶的)으로! 간직한 은금이었다. 이렇게 막중한 은금을 한방에 날려버린 분이 아사 왕이었다. 왜 그랬을까? 전쟁 때문이었다. 그것도 동족간 남북전쟁이었음!). 북쪽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아람 왕 벤하닷은 이미 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쪽 유다 아사 왕은 수많은 은금으로 벤하닷 왕을 매수하여 북쪽동맹을 배반하게 하고 오히려 자신과 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조직하여 북쪽 이스라엘을 협공하자는 전략이었는데, 그것은 멋지게 성공하였다(6). 그런데 아사 왕의 연합군전략을 우리 하나님은 ‘망령’이라고 평가하셨다(9中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 하나님이 보실 때 “망했다!”).

   그런데 아사 왕은 비교적 하나님을 잘 믿는 왕이었다(‘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자가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14:2-6>. 불행하게도 아사 왕처럼 믿음을 변절하고 만 신앙인은 지금도 우리의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음).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글라이드 메모리얼 감리교회는 다음과 같은 인쇄물로 주일예배에 참석하길 권유하며 전도했던 것이란다. “우리들은 모두 다 크리스천이 될 것을 믿는다. 자유주의자, 볼세비키 혁명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케인즈 학파, 온건한 공화주의자, 평화론자, 의사, 과학자, 교수, 시장상인, 라틴아메리카 사람, 뉴아프리카 사람, 유태인, 심지어 마오쩌뚱 까지도 틀림없이 모두 크리스천들이다.” 이 전도지의 글은 예배 광고시간에 그 교회의 목사님과 교우들이 함께 암송하기도 하였단다.

그때 그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복음에 대한 설교에 감동을 받았고, 빠져들곤 하였단다. 하지만 그 교회의 대부분의 예배들이 현대식으로 바뀌어갔단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변화는 그 교회당에 마약 상용자들과 히피들, 동성연애자들... 이들이 피난처로 삼기 시작하더란다.

   마르틴 루터가 이런 경고를 했단다. “나는 대학교들이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가 되지 않을까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만일 대학교들이 정성껏 성경을 가르쳐서 그것을 젊은이들의 마음판에 새겨놓지 않는다면, 대학교는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가 되고 말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의 애들을 성경이 지배하지 않는 곳에는 보내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이러한 사실을 깨우쳐 주고 싶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끊임없이 채워진 사람들이 없는 단체는 반드시 타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자 그러면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실제로 저와 여러분을 비춰주는 거울로 삼기에 충분한 가르침을 설교본문에서 함께 찾아보자.

   1) 은금(2)

   ‘은금을 내어다가’ 이 말씀은 ‘뇌물로 매수함’을 의미한다. 아사 왕은 동족간의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 아람 왕을 ‘뇌물로 매수함’이란 방법을 선택하고 사용하였는데,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나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아사 왕은 과거에 구스와 전투 때 58만 대 100만 + 병거300대로 절대 불리하였지만 기도를 선택하여 압승한 적이 있었다(14:8-13.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패망하였음이라’).

   이솝우화이다. 개와 당나귀가 한 집에 살고 있었는데, 주인은 유난히 개만 좋아하였다. 당나귀는 고민하며 생각하기를 “왜 주인님은 개만 좋아할까?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꼬?” 이렇게 골똘히 분석하다가, 어느 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면, 개는 꼬리를 치고 마구 뛰며 주인을 반기곤 하였다. “바로 그거로구나!”

   다음날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자, 당나귀는 자기 우리를 뛰어넘고 주인 앞으로 뛰어가서 팔짝팔짝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주인의 주변을 뱅뱅 돌면서 최선을 다해 재롱을 떨었다. 그 장면을 다 보던 주인님은 당나귀를 칭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당나귀에게 화를 내면서 우리에 가두더니 회초리로 마구 때렸다는 것이다.

   이 이솝우화가 웅변하는 교훈은 무엇인가? 자신의 기본본분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누구든지 어리석은 당나귀와 같다는 것이다. 주인 앞에서 날뛰었던 당나귀는 자신의 기본에 맞지 않았기에 주인은 어리석다고 단정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생략할 수 없는 기본이 있다.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할 일이 무엇이든, 마땅히 생략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기도이다. 그리스도인이 기도를 생략하는 것은, 엉뚱한 일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것으로 우리 하나님은 보신다.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당나귀처럼, 칭찬은 고사하고 도리어 화를 당하게 된다.

   2) 선견자 하나니(7)

   아사 왕은 동족 북 이스라엘 왕 바아사의 침략을 받았을 때, 이웃나라 아람 왕 벤하닷에게 엄청난 은금을 주고 매수하여, 바아사와 동맹을 깨고 오히려 자신과 동맹을 맺게 하여 연합군으로 바아사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지만, 하나님은 선견자 하나니를 보내어 ‘망령’이라고 책망을 하였다(9)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사 왕은 아람 왕 벤하닷을 매수할 게 아니라 선견자 하나니를 찾아가 의논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순종이요 충성이며 믿음으로 함이었다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배우고 행할 줄 알라고 대부분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오늘 본문을 설교하게 하신 것이다. 아멘.

   함석헌 선생이 쓴 ‘산’이란 시이다. “나는 그대를 나무랐소이다./ 물어도 대답도 않는다 나무랐소이다./ 그대겐 묵묵히 서 있음이 도리어 대답인 걸/ 나는 모르고 나무랐소이다.// 나는 그대를 비웃었소이다./ 끄들어도 꼼짝도 못한다 비웃었소이다./ 그대겐 죽은 듯이 앉았음이 도리어 표정인 걸/ 나는 모르고 비웃었소이다.// 나는 그대를 의심했소이다./ 무릎에 올라가도 안아도 안 준다 의심했소이다./ 그대겐 내버려둠이 도리어 감춰줌인 걸/ 나는 모르고 의심했소이다.// 크신 그대/ 높으신 그대/ 무거운 그대/ 은근한 그대.// 나를 그대처럼 만드소서!/ 그대와 마주 앉게 하소서!/ 그대 속에 눕게 하소서!” 함석헌 선생이 본 ‘그대’라는 산을 우리가 하나님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하나님의 크고 높고 은근하심을 알고 반영하길 축복한다. 아멘.

   3) 전심(9)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 왕에게 따끔하게 전했던 충고였다(‘두루 감찰하사’   שׁוט 슈트 run to and fro 이리저리 앞뒤로 ‘전심으로’ םלשׁ 샬람 entire, finish, complete, repay.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1-2).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표현하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이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많은 여 집사님들이 졸았단다. 그래서 목사님이 “왜 그렇게 졸고 있는 집사님들이 많습니까? 다음부터는 고춧가루를 가지고 와서 졸 때에 눈에다 뿌려보세요.”하고 심하게 책망을 하였다. 그랬더니 졸다가 깬 어느 부인 초신자가 말하기를 “워라? 내 눈에 고춧가루를 뿌리라고? 지 설교에다가 꼬추가루를 확 좀 뿌리시지.” 하고 투덜대더란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할 때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텍사스에서 전도집회를 인도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기 위하여 몰려왔단다. 그러나 그 부흥성회 첫 설교는 별로였단다. 그래서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그 이유를 알려고 한층 더 기도에 집중하고 설교를 하려고 하는데, 독일에서까지 왔던 잘 아는 평신도가 “어제 왜 설교가 무덤덤한 설교였는지 모르시죠? 어제 설교에는 십자가가 빠져 있었습니다.”라고 쓴 약 같은 충언을 하더란다. 그래서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그때 결심하길 ‘나의 설교에 십자가를 생략하지 않겠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우리 하나님의 뜻에 100가지를 다 충족시킬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핵심만큼은 빠뜨리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다. 시도해 보고 체험하길 축복한다. 아멘.

   자 그러면 오늘 설교가 가리키는 나만의 믿음신호등을 확인하고 맞추자. 오늘 설교는 아사 왕의 동맹전 승리이다. 그런데도 우리 하나님은 망령 짓으로 보았다. 기도대신 은금으로, 선견자와 의논 생략, 하나님께 전심보다 매수 때문이었다. 자주 생각나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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