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2일 설교
“축복을 이어가자!” (대하 11:21-12:5 ‘강함의 축복생활’) 18. 7. 22.
세계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은 이탈리아 발명가 안토니오 메우치(Antonio Meucci, 1808~ 1889)란다. 메우치는 1854년 전화기를 발명하였지만, 가난하여 자기이름으로 등록할 특허 등록비를 마련할 수 없어서 임시특허로 등록을 마쳤단다. 그런데 21년 후 1876년 2월 14일 영국출신 미국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과 미국발명가 엘리샤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가 2시간 차이로 전화발명 특허를 신청했는데, 벨과 그레이가 발명한 전화는 거의 비슷한 설계도였단다. 결과적으로 미국 특허사무국이 벨에게 전화발명 특허를 허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최초로 전화를 발명한 것으로 오랜 동안 잘못 알려져 왔다. 그렇지만 2002년 6월 미국의회는 안토니오 메우치를 최초 전화발명자로 공식인정 했단다. 126년 만에 최초 전화발명자는 벨이 아닌 메우치라고 바로잡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독일 물리학자 필립 라이스(Johann Philipp Reis, 1834~1874)가 알렉산더 벨보다도 먼저 1861년 전화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라이스가 발명한 전화기는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한 소리를 전달하지 못하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라이스는 전화로 연결을 시킬 수 있지만 대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이전에 안토니오 메우치가 발명한 전화도 비슷한 성능이었다. 그래서 임시특허권을 얻었을 뿐 별로 투자자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벨이 발명한 전화기는 사실상 메우치와 라이스가 만든 전화를 개량한 것이었다고 한다. 라이스가 만들었던 전화기에서 한 부품의 나사를 단지 한 바퀴 정도 더 꽉 조였더니, 그 작은 변화로 성능이 좋아져 통화에 성공하였고, 이어서 전화를 상용화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보면 최초 전화발명자는 안토니오 메우치라고 기록해 놓았고, 실용적인 전화기 발명자로는 ‘알렉산더 벨’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그렇다면 필립 라이스는 ‘한 바퀴 정도 부족’ 때문에 실용전화기 발명자리를 넘겨준 셈이다.
우리의 인생사에서 간발의 차이로 인생운명을 뒤바꾸게 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오늘 설교본문도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 하고 있어서 강성해지다가, 그만 빗나가더니 쓰라린 전쟁에 휘말리고, 축복의 몫을 보류 연기 취소당하고 말았다는 참으로 안타까운 실화를 보게 한다.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11:17, 12:2. 저와 여러분이 믿음생활을 해가는 동안 강성함을 전쟁으로 망치는 이런 일이 없기를 축복한다. 아멘!).
13절에 보면 르호보암 왕은 41세에 왕위에 오르더니 17년을 통치하였다고 했고, 15절에 북쪽 이스라엘 왕국과 항상 전쟁을 하다가 끝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혹(不惑)이라는 황금나이 41세부터 58세 때까지 임금님으로 보냈다는 것인데, 르호보암 왕은 성군시절을 4년밖에 하지 않았다(‘제오 년에 애굽 왕 시삭이’ <2>, ‘성읍들을 빼앗고’<4>, ‘여호와의 전 보물과’<9>). 르호보암 왕국을 가장 치욕으로 몰고 갔던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여호와의 전 보물’을 빼앗긴 일이었겠지요.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했고, 불로 응답받으며 언약까지 받았던 성전이었기 때문이다(‘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대하 7:15-16. ‘이 곳’ ‘이 성전’ ‘여기에’ ‘여기에’ =이대로라면 하나님이 엄청난 보호하심과 간섭하심과 보장을, 언약으로 강조해주셨던 성전이었음! 그렇지만 이토록 막중한 보장도, 언약도 휴지조각처럼 버리셨던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셨고, 저와 여러분이 그 하나님을 믿고 예배한다는 사실을 지금 또 한 번 명심하는 기회로 삼기를 바람!).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요, 행동하는 독일의 양심이며, 이 시대의 진정한 지성인으로 평가 받는 귄터 그라스(1927.10.26.~2015.4.13.)가 2002 한일월드컵 때 발표한 축시 ‘밤의 경기장’이다.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 사람들은 꽉 찬 관중석을 보았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옾사이드.”
축구공이 떠올랐다는 것은 인생이 시작됐음을 말해준다. 꽉 찬 관중석은 한참 진행 중인 온 세상 속을 말해주고, 그런데 그 온 세상 가운데 인생은, 운명을 좌우하는 일인데도 참담하게 단독으로 처리하는 자는 반드시 있는 법이다. 그 고독으로 골대 앞에 서서 단독자로 살아가는 이가 시인이었고, 골키퍼와 일대일, 골을 넣으면 영웅으로 치켜세워질 숨 막히는 천재일우를 만난 스타될 선수! 그때 심판이 호각을 불더란다. “옾사이드!”라고. 그 순간, 현실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는 것이지요.
때로는 우리도 환호해줄 관중 앞에서 골을 넣어 영웅을 하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지만 심판의 선언이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를 무시하면 믿음의 옾사이드에 걸린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훈련하셨다. 이 기둥들보다 앞서나가면 ‘신앙 옾사이드’이다. “하나님의 법칙을 무시하지 말고, 기도 없이 앞서지 말며, 성령님의 감동간섭 없이 앞서지 말자!”는 것이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호각이 있기 때문이다. ‘믿음 옾사이드!’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믿음생활로 돌아와 보자. 축복의 몫을 보류, 연기, 취소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자녀 삶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설교본문을 뒤지면서 정답을 찾아내 간직하자.
1) 버림(12:5)
르호보암 왕은 자기 왕국이 견고하고 강해지자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는데,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과 똑같다고 선지자 스마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다는 것이다(‘율법’ תורה 토라 law, instruction ← ירה 야라 shoot, throw, teach. 하나님 뜻의 본질을 담고 있음). 하나님의 율법은 범죄를 예방케 하고, 죄를 깨닫게 해주고,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어 닮게 한다(‘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 3:24>,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 죄를 예방역할! 죄를 깨닫게 해주는 역할! 하나님의 속성을 닮게 하는 역할! 그런데 르호보암 왕은 율법을 버렸으니 그만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어려워지고, 모르게 될 수밖에 없음!).
어떤 회사에서 강사가 말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100억 원씩 주신다면 어떻게 쓸 것인지 각자 얘기해 보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기분 좋게 여러 가지 의견을 쏟아냈다. “먼저 전원주택을 사고, 남은 돈으로 원룸들을 사서 월세를 따박따박 받아먹고 살겠습니다. 물론 십일조 헌금은 반드시 하고요.” “요즘 원룸사업은 빈방이 많아져 잘 안 되는데. 이자가 싸다지만 원금이 크니까 그냥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나 받아먹고 살아가는 게 편하지.” “진짜로 100억을 주시면 무조건 50억 원은 교회 성전건축을 하겠습니다. 진짜예요. 못 믿겠으면 50억 원을 먼저 떼어놓고 나머지 50억 원만 주셔도 좋습니다.” 강사님이 의견을 전부 듣고 나서 결론을 내렸다. “역시 여러분은 100억을 받을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만, 그 가정만 잘 먹고 잘 살라고 100억을 축복하시지 않으신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100억을 투자해 100명이 근무하는 회사를 만들고, 그 100명을 그리스도인으로 먹여 살린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100억을 은사로 주실 겁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니까요! 우리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 같은 형통을 성경처럼 체험되길 바란다면 꼭 하나님의 법을 붙잡길! 아멘.
2) 본 받음(12:1)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르호보암 혼자만 불순종한 게 아니라 국민을 불순종으로 이끌고 간 셈이었다. 이래서 지도자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범죄하였으므로’(מעל 마알 to act perversely, treachery 심술궂은 배신행위. חטח(하타 to miss, fail, error)보다 더 고의적이고 죄질이 나쁨).
두 계집종이 다투다가 황희 정승에게 와서 시비를 가려달라고 청하자 자초지경을 다 들어보더니 “네 말이 옳다” 또 “네 말도 옳다”라고 했단다. 그때 옆에 있던 부인이 한 마디 했다. “하나가 옳으면 하나는 틀린 법인데, 어찌 둘 다 옳다고 하시오?” 그러자 “그래. 부인 말도 옳소.”라고 해서 웃음으로 끝났단다.
육진을 개척하고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김종서가 병조판서로 회의에 참석했는데 회의실로 들어오던 영의정 황희가 큰 소리로 “여봐라. 병판대감 의자 한쪽 다리가 짧은가보다 빨리 고쳐드려라.”라고 엄명을 내리자 깜짝 놀란 김종서가 의자에서 황급히 내려와 무릎을 꿇고 바르지 못했던 자세를 사죄했단다. 그 모습을 민망하게 바라본 좌의정 맹사성이 퇴청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관대하신 대감께서 유독 김종서에게 왜 그렇게 엄하게 하시오?”라고 물었더니 “우리는 늙었고 장차 김종서가 나라를 이끌 것이니 그를 바르게 키워야 하지 않겠소?” 했단다.
황희 정승은 사소한 일에는 관대했지만 중대한 국사에는 시비곡직(是非曲直)을 분명하게 하기로 유명했는데, 태종부터 세종, 문종까지 신임을 두텁게 받아서 60여년을 관직에 있었고 영의정을 18년이나 지내면서도, 그는 좌천을 2번, 파직 3번, 귀양살이 4년을 당하였단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시비곡직(是非曲直)을 잘할 수 있어야 축복의 몫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아멘.
3) 지혜(11:23)
‘지혜롭게 행하여’(בין 빈 knowing, understand, distinguish, mark, intelligent, wise. = 일부다처제<11: 21, 23. 인본주의 정책<인구증가. 고려 왕건도 부인 29명과 정략결혼 하여 각 지방 호족세력을 통합했음> ≠ 신 17:14-20. 이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지혜라야 한다. 옛 우리 선조들은 識字憂患<착각, 억지. 병을 만드는 지식이 있다고>)
우리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이라는 믿음이치를 특히 제자들에게 깨우치셨다고 마 13:31-32에 기록되어 있다. ‘겨자씨 한 알’의 핵심가르침은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이다. 천국의 원리와 법칙에 대한 깨달음이 조금씩이라도 날마다 커 가고 있다면 그 사람을, 우리 하나님은 ‘보시기에 심히 좋은 신앙인’으로 인정하시고 창조적인 인생을 이루게 하시며 반드시 창대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미국의 어느 한인교회는 소속교단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정책을 따라가자 교회당건물을 포기하고 탈퇴하였단다. 그 교회당의 건물 값이 1200만 불(135억 원)인데, 그들은 설명을 이렇게 하더란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신앙고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큰 교회보다 순결한 교회를 원하십니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를 하면서 하나님께 은혜도, 축복도, 심판도 받겠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연약한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을 바라시고 출애굽을 시켜주셨다. 거룩함이란 죄를 이기고, 분리되게 하는 그러한 은혜 신앙생활이다. 반영하길!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에 비친 우리 자신의 믿음중심을 확인해보자. 르호보암 왕은 축복 몫(견고와 강성함)을 보류 당함! = 4/17만 하다 말았기 때문! 우리도 1/4을 하면서 열심이라고? 순종? 긍정적으로! ... 르호보암 왕(하나님의 법 버림, 죄 본을 보임, 인본주의 지혜) 하나님의 올바른 지식에 따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