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7일 설교
“완벽함이 참인가?” (대하 8:11-16 ‘솔로몬 왕의 신앙색깔’) 18. 5. 27.
연세대 철학과 교수님으로 명예교수로 저명하셨던 김형석(1920.7.6.~ 만 97세) 교수님이 이제 100세를 눈앞에 두고 계시는데,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20살이 될 때까지도 가족마저 단념을 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고, 50살이 되어서야 정상적인 건강에 자신을 찾았을 정도였단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무리를 하지 않고 조심조심 살아왔는데, 50을 넘기고 나서 주3회 정도 수영장을 찾았고, 하루에 50분 정도 걷는 운동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데, 김 교수는 ‘일’이 건강을 유지시켜줬다고 믿고 있단다.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 정신적으로 인간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에,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으며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라고 밝혀놓았다.
6·25전쟁 중이라 부산에서 대학입학시험을 치렀을 때, 시험시간이 끝났는데 남루한 차림을 한 응시자가 창문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었던 김 교수님은 그 수험생을 기특하게 보고 이름을 물어보며 격려까지 해주고 나서 얼른 성적을 보니 최하위였다. 그래서 다시 이런 충고를 해줬단다. “학생, 이제 그만 기도하고 내년에 도전해보게.” “네.” 그 학생은 또다시 기도를 하더란다. “공부는 않고 기도만 한다고 되나. 이런 게 교회의 병폐라니까.”
김 교수님이 합격자 명단을 학장님께 보고했다. “김 교수, 오늘 몇 명이 시험을 봤지요?” “입학정원보다 약간 더 많습니다.” “전쟁 난리 통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기특하지 않나요? 모두 합격시킵시다.” “네?” 그 순간 김 교수님은 큰 충격을 받았단다. 기도 때문에 최하위 성적이 합격선으로 올라간 건 아니었지만 학장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입학기준을 바꾸고 그래서 최하위 성적도 합격되는 것을 보면서 기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아주 특이한 예외라고 하지만, 김 교수님은 그때 피난민 수험생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을 부인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너무나 쉽게 기도를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여론 때문에, 체면 때문에, 과학 때문에...).
오늘 설교본문도 좀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어보면 솔로몬 왕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었는지 우리 하나님도 감탄하였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12-13). 지금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솔로몬 왕이 성전에서 열심히 번제를 드렸음을 알려주는 말씀인데, 특별히 관심을 끄는 말들이 여럿이다. ‘매일’ ‘안식일’ ‘초하루’ ‘일 년의 세 절기’라는 말씀인데, 성경독자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왜 그런가?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세에 죽으매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삿 2:7-1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1:25). 이렇게 신앙 삶이 끊어지고 묵은 잡초밭으로 변해버렸는데도 솔로몬 왕은 여호수아 시대를 집중적으로 회복시켜갔다는 것(히 2:1)이니 대단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은 신 16:14-17에 충실하는 말씀이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에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는 제목의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린 것이란다. 19살 때 졸업여행을 하는 한 학생이 그 그림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 그림의 아랫단에는 ‘나는 너를 위하여 목숨을 버렸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써져 있었다. 학생은 거기서 예수님께 일생을 헌신하고자 결심하게 되었단다.
학생은 나중에 백작으로서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자기 집을 예배장소로 바쳤고, 카톨릭 교회에 재산을 몰수당하고 쫓겨나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도는 교인들을 만나자 자신의 영지 땅까지 내놓았단다. 이 분이 바로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본 진젠도르프(Nikolaus Ludwig, Graf von Zinzendorf 1700.5.26.- 1760.5.9) 백작이다. 그는 모라비안 형제회를 조직해 경건주의 신앙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근대선교의 불꽃을 일으켰고,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를 회심시켰고, 존 웨슬리(John Wesley)에게 큰 영향을 미쳐 감리교회를 탄생케 했다. 특별히 우리나라 최초창기 선교사 귀츨라프를 조선에 파송하게 하였다.
이러한 선교부흥의 역사물결이 한 그림에서 비롯됐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지금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 모든 하나님의 기적은 먼저 십자가의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솔로몬 왕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하나님의 성전을 잘 건축하고, 잘 봉헌하고, 그 성전 앞 제단에서 번제를 드리는 일에 신앙고백대로(유념한 대로) 충실히 하였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저와 어려분의 신앙 삶에 거울로 삼을만한 교훈을 오늘 설교본문이 보여주는 솔로몬 왕에게서 함께 찾아 배우자.
1) 아버지(14)
'아버지 다윗의 규례를 따라’ 솔로몬 왕의 신앙기준, 신앙지침, 신앙근거를 밝혀주는 말씀이다(‘따라’ עמד 아마드 to stand by, remain, set up, confide in). 솔로몬 왕은 신앙적으로도 효자요 충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층관리가 퇴직을 한 후에 자신이 살 집을 마련했는데 여승진(呂僧珍)이란 사람의 이웃집을 천백만금을 주고 샀단다. 실제로 그 집값은 백만금인데 천만금이나 더 주고 산 것이다. 그래서 여승진이 송계아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송계아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백만매택(百萬買宅)이요, 천만매린(千萬買隣)’이라. 백만금은 집값이요, 천만금은 여승진이란 좋은 이웃을 보고 프리미엄으로 지불했다는 뜻이다. 좋은 이웃을 옆에 두려고 집값을 10배나 더 지불했다니 대단한 소신이다.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花香百里, 酒香千里, 人香萬里 :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뜻이니, 사람은 인품을 보고 사귀자는 것임). 이러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자녀 삶에도 참고하기에 충분하다.
2) 거룩함(11)
아버지 다윗의 왕궁에 바로의 딸을 살지 못하게 솔로몬 왕이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여호와의 궤가 있었던 곳이라서 그랬다. 그렇다면 바로의 딸과 여호와의 궤는 서로 함께할 수 없는 사이라는 의미인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절교를 하는 게 옳았다.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왕상 3:1 ‘바로의 딸’(‘the daughter of Pharaoh’ -NKJV-)은 외교전략상 1명!),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11:1-9),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아 2:15),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마 16:11). 바로의 딸은 단 1명일지라도 신앙의 독이요 암 덩어리이었다는 것이다.
노아를 생각해 보자. 말도 안 되는 엉뚱한 배를 만드는 일에 120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순종했다. 노아는 홍수 후에 350년을 살면서 950세까지 살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120년은 노아 일생의 12.6%(120년/950년. 방주를 지을 수 있는 나이라면 20-32세, 30-42세, 40-52세 ≠ 군대 3년 미필하는 부자들!)이다. 순종이란, 말도 안 되는 일에 기쁨으로 항복하고 동참하는 것이다(‘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8). 교인에게 가장 한심한 모습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봉사에 인색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주님의 목회자들에게 가장 안타까운 모습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편안하고 편리한 목회만 선호하고 그럴 때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한 은혜는 필경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심판되고 말 것이다. 아무런 영향력도, 아무런 힘도, 아무런 십자가도 지지 않는 은혜는 없다.
3) 이르렀더니(17)
영어성경은 ‘Then Solomon went to Ezion Geber’라고 번역했다. 솔로몬 왕이 에시온게벨에 가서 결국 금 450 달란트(450 X 34.3kg = 15t)를 수입해 왔다. ‘바닷길을 아는’이란 말씀을 보면 선박을 이용하여 외교통상무역방문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9:21). 이 본문에서도 또 확인되는 것처럼 솔로몬 왕은 번제와 삶, 주일과 엿새, 신앙의 생활화를 잘 조화시킨 신앙인이었고, 저와 여러분이 이런 점을 반드시 닮아갈 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요 본문을 우리의 거울로 삼는 것이다.
한국의 결혼혼수는 ‘3K’라는 말이 있었지요. 이 K는 ‘아파트, 자동차, 별장’의 열쇠를 뜻하는데, 상류층 사람들의 결혼 혼수감으로 매우 중요시 한 것들이다. 아직도 혼수를 중요시 하는 풍속은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그런데 독일에서도 결혼 할 때 3K를 요구한단다. 독일의 3K는 한국의 열쇠들과 완전히 다르다. 첫 조건은 ‘요리’(Kochen)이다. 결혼 전에 집에서 즐겨먹던 요리법을 익히라는 것이다. 둘째 조건은 ‘아이’(Kind)이다.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내려오는 자녀교육의 노하우를 결혼 전까지 미리 터득하고 결혼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Kirche)이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처럼 자원헌신 봉사에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갖추고 결혼을 하라는 것이다.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로 선택될 수 있었던 것은 나그네의 낙타에 물을 먹여주는 배려심 때문이었지요. 외모를 치장하는 사람은 허세꾼들에게 부러움을 사겠지만, 중심을 단장하는 신앙인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성도 된다. 외모보다 내용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또 속사람이 개어나도록 신앙생활을 한다면 반드시 창대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을 보셨는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그 무엇에 맞춰서 새로운 결단을 해 보자. 오늘 설교본문은 솔로몬 왕의 믿음푯대와 그 색깔을 잘 보여주었다. 솔로몬 왕은 아버지 다윗왕의 신앙유언을 잘 따라갔고, 아버지 다윗 왕의 신앙 삶을 존중하였으며, 신앙의 생활화를 잘 해 나갔다. 단 한 가지 ‘바로의 딸’이란 외교정책이 ‘옥의 티’이었다. 지금 명심하여 늘 생각나길 축복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