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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3일 설교

“고침이냐? 재앙이냐?” (대하 7:11-19 ‘솔로몬 왕이 깨달은 믿음방향’) 18. 5. 13.

오스트리아에서 1889년 18살 어린 조카와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구두닦이로 시작해 세관 공무원 과장직까지 올랐지만 술꾼으로 성격도 난폭해서, 그 아이는 아버지의 강압으로 열렬한 화가의 꿈을 꺾고 실업학교에 진학했다. 14살 때 아버지가 죽자 2년 후에 학업을 중단하고 화가가 되려고 수도 비엔나로 가서 닥치는 대로 막노동을 하는데, 18살 때 어머니마저 유방암으로 돌아가시고, 1914년 25세 때 제1차 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군 사병으로 참전했다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30세에 반유대주의 정당인 독일노동당(이후의 나치당)에 뛰어들어 정치인생을 시작하였단다.

그는 이태리 독재자 무솔리니에 자극을 받아 34살 때 독일뮌헨에서 봉기하였다가 실패하여 감옥에 갇혔다. 9개월 후에 출옥하여 흩어진 당원들을 다시 모아, 43세 때 대통령 선거에서 패하였지만, 대신 총리로 발탁되었다. 그 다음 해에 대통령이 죽자 국민투표로 대통령을 겸하게 되어 독일을 호령하는 총통이 됐다. 그는 1939년(50세)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독일과 전 세계는 전쟁에 휘말리었고, 유대인 600만 명이 살해되어 아직도 세계가 그 후유증 앓고 있다. 그가 히틀러(Adolf Hitler)이었다. 한때 히틀러를 사랑했거나 연인이었던 여자들 5명은 모두 젊은 나이에 석연치 않게 죽었다. 히틀러도 1945년 4월30일 56세 때 지하벙커에서 자살하였고 그 소식이 세계로 퍼지자 전 세계가 박수갈채를 보내게 되었단다.

1889년 또 한 아이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독일 이주민이었다. 2살 때 텍사스에서 캔자스 농촌으로 이사했다. 이유는 조용한 농촌이 아이의 신앙교육 환경에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온 가족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교회생활에 충실했고, 매일 저녁이면 기도로 하루일과를 끝냈다. 이 아이는 가정형편이 궁핍해 어려서부터 노동을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형의 대학학비를 마련키 위해 1년간 일을 하다가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세계2차 대전 당시 그는 영합군 사령관이 되어 히틀러와 11개월에 걸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그는 1953년(64세) 미국의 34대 대통령이 됐는데 그가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이다. 당시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설교자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 목사님의 이름(Dwight)과 다윗(David)의 이름을 딴 것이다.

1889년에 두 동갑내기 독일계 아이가 태어나 하나는 세계를 죽음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고, 한 아이는 애국자로 세계를 평화로 이끌었다. 이러한 차이는 바로 부모요 가정이었으며 믿음생활이라는 성장환경 때문이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살아가는 환경이 그 사람의 성품형성에 많은 동기부여와 영향을 준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를 만나 무엇을 배웠느냐는 막대하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오늘 설교본문도 솔로몬 왕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보장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주는데. 그렇게 된 데는 솔로몬 왕이 다윗 왕의 아들로 자랐기 때문이었다고 18절에 기록되어 있다. ‘네 아버지 다윗과 언약하기를’, ‘다윗과 언약’은 단순 직접적으로 ‘다윗왕조’를 의미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혈통으로 성육신하였음을 마태복음 제1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다윗을 중복함으로 강조되어 있음. 2: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 가니라.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 마태복음의 말씀은 사탄의 온갖 집요한 방해와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철저하게 이루어가심을 보여주는데, ‘다윗과 언약’이 ‘다윗왕조의 성취’인 게 사실이지만, 또 하나 더 메시아를 통한 구원왕조를 뜻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솔로몬 왕은 신앙적으로도 금수저로 태어나 최고급 금수저를 누리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14절 끝에 ‘고칠지라’(רפא 라파 to heal, to restore to prosperity, to forgive, comfort).

영국의 대주교 한 분이 매일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일정한 시간동안 기도를 시작했는데, 30년이 되었단다. 이 기도기간은 그 누구도 세우지 못한 대기록이었다. 게다가 대주교는 화려한 언어로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일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를 했고, 사람들이 대주교의 기도하는 모습을 칭송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그 기도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런데 그 대주교가 심장마비로 죽었단다. 그것도 기도하는 중에... 그날도 그는 늘 하던 대로 주교복장을 하고 마음을 모아 애절한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시간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그래, 네 기도를 다 듣고 있느니라.” 그는 평생 처음 들어보는 음성인지라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그만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요 소설가인 웰츠(Herbert George Wells)가 쓴 단편소설(‘대 주교의 죽음’)이지만 기도의 위선을 잘 경고해준다.

자 그러면 솔로몬 왕은 어떻게 해서 그 어마어마한 보장을 받게 되었는가? 저랑 같이 그 답을 찾아보자.

1) 떠나라(14)

‘악한 길에서 떠나’(שׁוב 숩 return, restore, renew, refresh. 단순히 분리함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원상회복 수준(단계)까지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좀 더 설명하면 13절에서 언급한 ‘메뚜기 떼’나 ‘전염병’은 그냥 자연현상, 자연재앙으로 간주하게 쉽다. 홍수나 가뭄, 태풍, 지진, 냉해 등등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왕에게 자연재앙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과 믿음생활관계를 점검해 보고 본래의 좁은 생명길로 원상회복시키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잘 믿는 부인인데 남편은 교회를 나가지 않았단다. 아무리 사정해 봐도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던 남편이 사업부도를 내자, 부인이 간곡히 사정을 해서 남편이 함께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부인은 신났고 감격한 예배를 시작했다. 그런데 주일 설교본문이 창세기 5장이었다. 아담의 족보인데 누구는 누구를 낳고 몇 세를 살다가 죽고, 낳고 살고 죽고, 낳고 살고 죽고, 낯선 이름들만 계속 지루하게 나오는 족보이었다. 부인은 무척 실망을 하게 되었다. “아니, 그 많은 성경가운데 하필이면 창세기 5장을 설교하다니...” 속이 상하고 목사님마저 원망되었다. 예배시간 내내 속이 뒤집혀서 설교 말씀은 들리지 않았다. 실망한 부인은 집에 돌아와서도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이 되자 남편이 교회에 가자고 먼저 준비를 서둘렀다. 부인은 깜짝 놀라 어쩐 일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지난주일 설교에 깨달은 바가 많다고 하더란다. 부인이 다시 물었다. “도대체 낳고 죽고, 낳고 죽고, 그 말씀에 무엇을 깨달았다는 거요?”라고 하니까 남편 왈 “모든 사람이 이렇게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마는 허무한 인생인데 나는 이제껏 무엇을 하고 살았나?”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속으로 기도했단다. “전능하시다는 하나님이시어, 저는 지난 세월을 잘못 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다르게 살아보겠습니다.” 명 설교는 성령님이 통역해주시는 설교인 것이다.

재난일수록 성령님이 감동감화로 생각나게 하시는 길(장소, 시간, 일...)로 돌아오는 게 고침을 받는 명품결단이라는 것이다! 잘 활용하게 되길 축복한다. 아멘.

2) 기도하라(14)

‘낮추고 기도하여’(כנע 카나 be subdued, submit, to bow down / פלל 팔랄 to judge, intercede, play for any one, supplicate. = ‘겸손한 간구’(‘if they pray to me and repent and turn away from the evil they have been doing,’ -GN- ‘shall humble themselves, pray, seek, crave, and require of necessity’ -Amf-).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가족이 생활에 맞추느라고 조그만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단다. 이사하는 날 일곱 살 된 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그곳에도 예배당이 있나요? 주일학교에 못가면 안 되잖아요” 어머니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곳은 아주 작은 마을이라서 아직 예배당이 없는데 어떡하지?”

온 가족이 이삿짐을 챙기는데 딸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 보니 딸이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 안녕히 계세요. 저희 집은 예배당이 없는 마을로 이사를 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딸의 기도를 듣고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이 가족이 그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간 지 2달 만에 예배당이 생기더란다. 하나님은 순진 무궁한 아이의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고 응답하셨다. 기도하는 아이를 둔 부모는 가정에 보화를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참신한 기도라면 환경을 고치게 한다. 아멘.

3) 지키라(17)

‘내 율례와 법규를 지키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하나님의 법칙에 맞추며,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17절에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한 것과 같이’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기준이요 수준이다. ‘다윗만큼’ ‘다윗이 행한 정도로’이다. 그런데 ‘네 아버지’는 충분한 목격과 경험, 이해, 숨겨진 비결까지 알고 있는, 하려고 시도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처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실패하고 망할 가능성이 꾀 높은 것도 사실이다(19-20).

꼬부랑 할머니가 산길을 가다가 두 갈래 길에서 이렇게 기도했단다. “하나님, 지금 저의 길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제 지팡이가 오른쪽으로 쓰러지면 오른 쪽 길로 올라가고 왼쪽으로 쓰러지면 왼쪽 평지로 걸어가겠습니다.” 할머니는 기도를 마치고 자기 지팡이를 길 가운데 세워봤다. 그러자 그 지팡이가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할머니는 지팡이가 왼쪽으로 쓰러지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하나님, 한번만 더 해볼게요.” 하며 지팡이를 다시 세워보았지만 지팡이는 이번에도 오른쪽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오기가 발동한 할머니께서 지팡이가 왼쪽으로 쓰러질 때까지 계속해서 세웠다. 그러시더니 할머니는 “역시 하나님은 나를 왼쪽 길로 인도하시는 구나!” 하시고 왼쪽 평지로 걸어가셨단다. 기도는 순종함이지 관철이 아니다. 기도할 때 기억나길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다시 한 번 오늘 설교말씀으로 저와 여러분의 믿음생활을 저울질해보자. 저울의 바늘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오늘 설교본문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가르침은 재앙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 삶, 아니 재앙을 극복하는 믿음생활이다. 이것은 세 가지 방법이었는데; 신앙 삶을 근본적으로 원상회복함으로! 겸손하게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따름으로!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재앙을 극복하는 비결로 체험되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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