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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5일 설교

“영광이 가득하게!” (대하 5:11-14 ‘솔로몬 성전의 찬양’) 18. 3. 25.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로 이어주는 네팔 히말리야 쿰부 지구의 루클라 공항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 끝자락 안내판에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SAGARMATHA NATIONAL PARK WELCOMES YOU”라고 적혀 있고, 그 위에 “clean and green”(깨끗하고 푸르게)이란 말도 하얀 글자로 써 놓았단다. 사가르마타는 에베레스트 산을 가리키는 네팔 말이다.

네팔당국은 에베레스트 산 주변에 산악인들과 관광객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 1.2톤을 이미 수거해 이곳 루클라 공항에서 수도 카트만두까지 공수해 재활용한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하고, 앞으로 100톤 정도 쓰레기를 더 옮길 계획이라는 뉴스도 전했다는 것이다.

물론 산악인들은 자신이 만든 쓰레기를 몽땅 가지고 하산하도록 교육을 받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쓰레기는 점점 쌓여가고 있는 실정이고, 해마다 현지 가이드 셀파들은 쓰레기를 모아 수백kg이나 쌓아두고 있는데, 올해 네팔당국은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들을 수도에까지 먼저 옮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쓰레기 중에 가장 많은 게 맥주병과 통조림깡통, 못 쓰는 등산 장비, 고산 적응에 반드시 필요한 산소통 용기 등등이란다. 한해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을 찾은 등산객들은 10만 명이 넘어서 산업쓰레기 외에 인간배설물도 엄청난 양으로 버려지고 있어서 2015년에 네팔산악연맹은 등산객들이 마구 버린 배설물이 건강을 위협할 정도라고 경고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에베레스트 봉우리 정상에 올라서 있는 산악인 뉴스를 보는 순간, 에베레스트 산에 버려진 쓰레기들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 전혀 없는 것처럼 환영을 하고 찬사 일변도로 물결친다. 그런데 그렇게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을 찬양하는 그 순간에도 쓰레기는 분명히 백 톤도 넘게 버려져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보여주고 외쳐대는 찬사만 듣는 게 아니라 버려진 쓰레기들까지 함께 보시고 판단하신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맞추는 게 어렵지만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설교본문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만점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14). 이런 게 은혜이고, 응답이며, 진짜 축복이다. 이런 응답을 사모하고 부러워하는 그리스도인이 설교본문을 잘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설교본문은 솔로몬 왕이 성전건축을 다 마치고 성전기구들을 배치하면서 마지막으로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한 후에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는데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13). 여기서 우리가 중요시할 바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게 하는 우리의 예배,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찬송과 봉사도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6시간이면 자라는 버섯이 있는데, 호박은 6개월을 기다려야 먹을 만큼 자란다. 그러나 참나무는 6년이 지나야 제 구실을 하고, 명품 참나무로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을 자라가야 한단다. 명품 참나무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세월만 채우고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신앙훈련을 받는 게 필수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명품순종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정금 같은 신앙지도자로 키우기 위하여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시키면서 참 신앙순종과 충성을 배우게 하셨다. 모세도 왕자훈련을 40년, 광야에서 양치기훈련 40년을 마친 후에 출애굽 지도자로 보내셨다. 여호수아는 그러한 모세의 시종으로 40년 동안 배우게 하시고 가나안정복 지도자로 쓰셨다.

베트남 전쟁 때 존슨 미국대통령은 군사들을 향해 미국이 개발한 최신무기를 가지고 싸워 승리하라고 독려했다. 미군은 그 최신무기로 10년 동안 싸웠는데 결과는 패전으로 끝났다. 이스라엘과 아랍연맹 간에 벌어진 ‘6일 전쟁’은 제3차 중동전쟁이라고도 불리고 있지요. 196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아랍 4개국이 연합해서 벌어진 이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엄청난 기적을 이루고 승리하였다. 아랍지역에서 가장 작은 영토와 숫자도 가장 적은 국민을 가지고 있던 이스라엘이 그 당시 아랍의 강대국인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국가 4개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여 확실하게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6일 전쟁’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전쟁의 기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딱 6일간 전쟁으로 승리를 종식한 그 배경에는 7일 째 주일예배를 드리려고 전쟁이 멈추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맞다. 하나님 중심을 철저하게 앞세울 때 우리 하나님도 기적차원으로 응답을 해 주신다는 것이다. 솔로몬 성전에 가득한 영광도 마찬가지 이치이었다.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오늘 설교본문을 통해 반드시 배워 활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믿음원리는 뭘까? 저랑 같이 설교본문을 치밀하게 살펴보면서 그 답을 찾아내자.

1) 이 때(11)

‘이 때’라는 말씀은 지난주일 설교 때 확인해 봤던 대로 솔로몬 왕이 성전에 언약궤를 안치하던 그 때를 말한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언약궤를 안치할 때 심혈을 기우렸던 사실 몇 가지는 장로들과 족장들이 다 참여하였고, 귀찮아도 하나님의 법대로 레위인들이 언약궤를 메고 올라갔고, 또 풍성하게 제사를 드렸다. 이러한 가운데 찬송을 일제히 불렀더니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멘.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트렘방 마을에 네이팜 폭탄을 투하했다. 마을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그때 불길 속에서 한 소녀가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왔다. 소녀는 온 몸에 화상을 입었다. AP통신의 기자 닉무트는 도망치는 소녀의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서, 그 사진으로 ‘퓰리처’ 상을 받았는데, 이 소녀의 이름은 킴폭이며, 나중에 평화를 호소하는 유엔의 명예대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킴폭이 한 말이다. “나를 전쟁의 상징으로 기억하지 말아주십시오. 열일곱 번이나 수술할 때 사람들을 증오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워하던 사람은 내 자신이었습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모든 사람을 용서했고, 그때부터 행복과 사랑이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1996년 워싱턴에서 월남전 기념비 제막식에서, 킴폭 여인이 초청강사로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연설에서 민간인 마을에 폭탄을 투하한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면 그를 용서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죤 머플러라는 비행기조종사가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 조종사입니다. 저의 오판으로 고통을 드려서 그 일로 계속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용서를.....” 킴폭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하였다. “용서합니다. 저는 다 용서합니다. 괜찮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일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하는 감격스러운 장면 앞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자신과 가족, 온 동네 사람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만들어준 그 장본인을 킴폭 여인은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는지 신문기자가 그녀와 인터뷰를 하고 이렇게 보도하였다. “마음속에 미움과 증오가 넘쳐났지만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했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았고 실천하였던 것이다. 눈에 보여주는 행위나 말만 강조할 게 아니라 그 행위와 말을 하고 있는 중심을 하나님은 보시고 평가하신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께서 솔로몬 성전에 영광을 가득하게 하셨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아멘.

2) 함께(12)

솔로몬 성전에서 찬송했던 사람들은 광장이 많았다. 우선 악기찬송 부대와 목소리찬송 부대로 나눌 수 있는데, 레위 사람들 아삽과 헤만, 여두둔, 그 아들들과 형제들은 다윗 왕이 철저히 준비시킨 찬양대원들이었다(대상 25:1). 그런데 제사장 120명은 찬양전문가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찬송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미리 잘 준비한 찬양대와 평소에 찬송과 좀 거리를 둔 제사장 120명이 함께 일제히 크게 찬송을 불렀을 때 하나님의 가득한 영광으로 응답하셨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 된 협력동참이다.

큰 돌과 자갈과 모래와 물을 모두 한 항아리에 넣고자 할 때 무엇부터 넣으면 될까? 크기 순서로 ① 큰 돌 ② 자갈 ③ 모래 ④ 물을 넣으면 쉽게 끝난다. 그러나 순서를 바꾸면 힘들어진다. 이런 일을 우선순위라고 한다. 여기서 가장 먼저인 큰 돌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인 것이다. 어릴 때 예수님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믿으면 그 사람 안에 다른 지식이나 풍속들이 가득 들어가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신앙 삶’은 혼동을 일으키지 않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착하고 다정한 분이 예배당 바로 옆에서 40년을 살았지만 끝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돌아가셨단다. 그동안 교우들이 오고가며 얼마나 자주 전도를 시도했겠는가! ‘신앙’이라는 큰 돌이 어릴 적에 그 분 안에 들어갔더라면 오죽 교회중심으로 살았을 텐데... 그 분은 할머니 손에 끌려 절에 다니는 바람에 다른 자갈이 먼저 들어가 큰 돌이 들어갈 자리를 차지해 버린 것이다. 전도만 그럴까? 좁게는 교회의 봉사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법칙이해, 계획실현 인식이 함께, 일제히, 협력동참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아멘.

3) 감사(13)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이 말씀은 찬송내용, 찬송의 알맹이, 신앙고백을 의미하는데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라고 밝혀놓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인식이다. 하나님을 알고 맞게 찬송했을 때 영광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이 자기 어머니의 얼굴흉터 때문에 아이들에게 ‘문둥이 아들’이라고 놀림 당했단다. 그래서 그 아이는 집에만 있으려 했고 학교에 가는 것도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으니까 왜 그러느냐고 어머니가 물어봤다. 그러자 대답하길 “아이들이 ‘문둥이 아들’이라고 놀려대서 학교에 다니기 싫다.”고 했다.

어머니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입을 열었다. “네가 두 살 때 너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엄마는 밭에서 일을 했는데, 갑자기 집에 불이 나서 급히 뛰었지만 이미 너는 불 속에 갇혀있었다. 엄마는 네가 죽는 것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담요로 너를 감싸고 뛰어나왔지. 너는 담요에 싸여 있어서 다행히 괜찮았지만 나는 그때 화상으로 이 얼굴이 됐단다.”

비록 어린애였지만 어머니의 얼굴이 문둥이처럼 된 것은 바로 자신을 살리려다 생겼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 아들은 엉엉 울다가 당장 학교로 가서 반 친구들에게 자기 어머니처럼 훌륭한 어머니가 없다고 자랑을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참 용기요 자신감이며 간절함이었다. 하나님의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의 찬양에 영광이 가득했던 것이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 중에 꼭 반영해보고 싶은 것들을 챙기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찬송! 예배 중에! 협력동참! 하나님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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