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1일 설교

January 1, 2018

                      “송축을 받으소서!”  (대상 29:10-19 ‘성전건축에 나타난 다윗의 신앙중심’) 17.12.31.

   인천시 남구 주안1동에 위치한 주안감리교회의 교육관 5층은 300평이 넘는 ‘국제성서박물관’인데 1995년 4월 30일 개관되었고, 미국에서 가장 큰 성서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는 유리카박물관보다 5배나 많은 성경책을 보유한 세계최대 규모란다. 거기엔 주안감리교회 원로목사이자 초대 관장이었던 한경수 목사님이 45년간 82개국에서 고서점을 뒤져 수집한 7,000여 권, 미국인 성서수집가 웨이크 필드 박사가 180여 개국을 여행하며 모았다는 성경 10,000여 권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되어 있는 성경들 중에는 독일 구텐베르크 성경 원본(1456년 최초 활자본과 전 세계에 18권만이 남아 있다는 최초 활자본)을 비롯해 수백 개 언어로 된 희귀한 성경책들과, 히브리어 두루마리 성경 사해사본(1947년 쿰란동굴에서 발견된 길이 9m 40㎝인 기원전 1세기의 것임), 파피루스나 양가죽에 직접 손으로 쓴 성경, 라틴어로 인쇄된 성경, 창세기 첫 글자를 순금으로 만든 ‘플러스 성경’(1488년), 옛 소련의 레닌그라드 고서점에서 구입했다는 알렉산더 성경(1700년대), 철갑으로 쌓인 러시아 성경, 이디오피아에서 구입한 450년대 양가죽 성경 등등 희귀본이 수두룩하여 수백 년에서 2천 년 전 성경까지 있다니 대단하다.

   또한 1887년 우리 한글로 처음 번역하여 인쇄된 ‘예수성교 젼서’와 붓으로 쓴 성경, 조선기독교연맹 중앙위원회에서 발간한 북한 성경도 볼 수 있고, 또 56개 소수민족 말로 번역된 중국 성경책과 최초 일본어 번역 성경책도 있단다.

   그런데 그 17,000여 권 중에 구 관회 집사가 쓴 성경도 있단다. 구 집사는 위암진단을 사형선고로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다가 후손에게 마지막 신앙유산을 하나 남겨주고 싶어서 친필로 성경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 혼신을 다 바쳐서 성경을 쓰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썼는데, 놀랍게도 그가 성경을 쓰는 동안에 성령님이 불로 임하셔서 위암을 깨끗하게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쓰는 게 암병을 치료하는 방법일까? 암전문의들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왜 성경을 쓰는 동안에 암병은 완전히 사라졌는가? 구관회 집사님이 성경을 쓰기 시작할 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증언하는 심정으로 눈물로 쓰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시고 합당하기에 암병을 태우셨던 것이지, 성경쓰기 자체를 무조건 암치료비결로 인정하신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삶에서 믿음의 중심을 어디서 무엇을 하든 빠뜨릴 수 없는 핵심이라는 사실을 성경 곳곳에서 수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오늘 설교본문은 뚜렷하게 잘 드러나 있는데 특히 11절이 집중되어 있다(‘높으사’ והמתנשׂא 웨하미트나세 lift up yourself. 사역형 분사.  נשׂא  나사 = to be elevated, lift up the head of another, to lead, exalt, ‘머리이심’  ראשׁ  로쉬  head, leader, chief, top, first, beginning, capital. = 주권자, 창조주, 역사주관자. 그렇다면 우리가 중요시할 핵심은 하나님 인식, 즉 하나님을 누구로 인식하고, 그 인식을 어느 정도로 신앙행위나 삶에 반영하느냐는 것임). 

    창 22장 12절에 이러한 말씀이 있지요.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려고 제물로 독자 이삭을 잡으려고 칼을 뽑았을 때 그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이다. 그런데 ‘이제야’는 이전까지는 없었음(하지 않았거나 못하였음)을 말해 준다. 이 사실을 ‘믿음의 중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양궁선수가 화살을 10점짜리 동그라미 안에 맞추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믿음의 중심을 하나님의 언약실현에 제대로 맞추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게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하며 또 쉽게 되지 않는지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성경은 16-17절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이게 바로 한국교회에서 인기를 끄는 축복비결이요 원리라는 것이다.

    미국 어느 교회가 초등학교 5-6학년 중에 유아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을 골라 1년 정도 신앙교육을 시킨 후에 어른 예배시간에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는 프로그램을 가졌단다. 교회학교 선생님이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었다. “조지, 너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게 뭐지?” 조지는 사전에 외운 대로 롬 8: 38-39로 대답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저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조지가 대답을 하자 가족들과 어른들이 박수를 쳤다. 선생님은 마리아, 요한, 제임스에게 차례로 똑같은 질문을 하였고 다들 암송한대로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

    그런데 마지막 레이철(Rachel)이라는 아이가 문제였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정신지체아였기에 부모님이 긴장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롬 8:38-39을 긴 말씀 그대로 다 암기할 수 있을 지 의심되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이 물었다. “레이철, 너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무엇이 끊게 될까?” 레이철이 미소를 짓더니 간단히 대답했다. “Nothing!”(아무 것도 없어요!). 아무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지 못한다고 대답하자, 선생님도 목사님도 어른들까지 뜨겁게 박수를 쳤단다. “Nothing!” 간단하지만 참으로 분명한 사실(All is LORD’s things)을 밝힌 대답이었다. 옳다. 이 확신을 행동했던 주기철목사님, 손양원목사님, 유관순청년은 죽음 앞에서도 용기와 소망을 잃지 않았다. 아멘.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오늘 설교본문에서 꼭 확인하고 챙겨야할 가르침은 뭘까? 함께 찾아보자.

   1) 주재의식(12) 

   ‘주재’(מושׁל모셀. prince. dominion.  משׁל 마살. to rule, to have power to do anything. ‘and You reign over all.’ -NKJV-<군림>. ‘you rule everything by your strength and power; and you able to make anyone great and strong.’ -GN-).

    ‘그리운 금강산’이라는 가곡은 4분의 4박자로 3절까지 있는데, 최영섭 작곡자는 1961년 KBS방송으로부터 금강산을 주제(主題)로 하는 노래를 작곡요청을 받고 한상억 시인에게 작시를 부탁하여 곡을 붙여서 1961년 8월 18일에 완성해서 통일염원을 상징하는 가곡처럼 되었다.

   1절만 보면 ;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 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그런데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작사자에게 직접 일부 가사를 수정하도록 해서 ‘더럽힌 지 몇 해’는 ‘못 가본 지 몇 해’로, ‘우리 다 맺힌 원한’은 ‘우리 다 맺힌 슬픔’으로 ‘더럽힌 자리’는 ‘예대로인가’로 바꾸었다. 사실 원곡의 가사는 첫 소절을 ‘누구의 주재(主宰)’로 시작하는데 인쇄과정에서 실수로 ‘누구의 주제(主題)’로 잘못 기록하였지만, 원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두었단다.

   주재(主宰)와 주제(主題) 엄청 다르다. 앞에 주재(主宰)는 우리나라 사전에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이라 했고(통치), 후자인 주제(主題)는 작품이나 연구나 토의 등에서 중심이 되는 사상이나 문제이다. ‘주재(主宰)’라는 말은 그만큼 드물게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고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단어이다. 다윗 왕은 주재를 잘 알고 철저히 시인했다. 우리도 생활화하길!

    2) 자아인식(25)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에 ‘그림자’라는 말이 있는데, 다윗 왕이 가리킨 그림자의 실체는 이스라엘 백성이었고, 그 이유는 ‘주님 앞에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를 우리가 꼭 배워야 하는 것은 우리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보면 당연해진다. ‘바리새인이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저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7:11-14. 값진 아니함들에 대한 감사와 십일조를 우리 하나님은 하찮게 보시고 말았다는 것임! 왜 그랬을까? 하나님 앞에서 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비교하고, 감사하고 십일조를 자랑했기 때문).

   옛날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런던시외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단다. 일행 중에 한 명이 황급히 농가로 들어가서 우산을 좀 빌려달라고 간청했더니, 주인은 짜증난 얼굴로 여러 우산 중에서 살이 부러진 것 하나를 주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얼른 받아들고 뛰어가 일행 중 한 여인에게 씌워주더란다.

그러고 며칠 후 예쁘게 포장된 소포가 배달되었는데, 빌려주었던 그 우산과 편지 한 통이었다. 그 편지에 정중한 감사인사와 함께 이름과 사인을 남겨놔서 보니 “여왕 엘리자베스” 그때 엘리자베스 여왕은 민정시찰 중에 소나기를 맞았던 것이다. 농부를 편지를 보고서야 좋은 우산으로 골라서 줄 걸... 한없이 후회를 했단다. 눈에 보인대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자아인식을 간직하고 살라는 것이다. 다윗 왕이 그랬다. 저와 여러분도 다윗 왕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아 인식으로 믿음생활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한다!

   3) 감찰시인(17)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בחן  바한 to prove. trial. 시련이나 고난을 통해 확인 평가함). 그런데 다윗 왕은 18절에서 이러한 기도를 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יצר 예체르. something formed, frame, thought). ‘이것’<자원하여 하나님께 드림>을 가지고 주께로 돌아오게<예배중심이, 기도, 봉사도...>.

    노인들만 모이는 시골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은 한 달 사례비가 30만 원인데 행복지수는 충분이라고 밝혔단다. 30만 원은 예배당까지 전기세 내고 교회 봉고차 기름 값으로 딱 맞는데, 가끔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으로 생활을 하려니 불편하기도 하였지만 큰 지장 없이 살아가게 되더란다. 한때 이름만 밝히면 쉽게 알 수 있는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기도 했는데, 오랜 역사를 가진 그 교회는 기존 틀을 바꿀 수 없어서, 목회자는 이미 정해진 역할만 기계처럼 진행하게 되었고, 그 댓가로 월급은 호봉제이었다. 그러니 주일마다 반복되는 똑같은 예배는 변화를 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목회의 사명감은 시간이 갈수록 조직과 타협하는 선에서 흐지부지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 목사님은 교회사임을 결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유... 우리 목사님 월급도 지대로 못 줘서 어쩐대유.”하면서 늘 미안한 마음으로 목회자를 대하는 순박한 성도들을 바라볼 때마다 “이게 목회지!”라는 생각에 목회 맛이 나고 가난하지만 행복감은 넘쳐난다고 실토했단다.

   마음속에 살아있어서 삶을 만드는 신앙관이 있다는 것인데, 다윗 왕도 이것을 아주 중요시 하고 간구했다.

   자 이제 오늘 설교 중에 지적되어 떠오른 나만의 앙금을 다시 챙겨들자. 다윗 왕은 성전건축 준비를 다각도로 끝내고 이제 송축기도를 드렸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은 다윗의 믿음중심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우선 돋보여서 공감되었던 게 주재의식과 자아인식, 감찰시인이었다. 우리도 다윗중심으로 대하 1:1을 체험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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