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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5일 설교

“기록된 것처럼 하자!” (막 1:2-8 ‘올바른 성탄 준비’ 2017.12.25./ 07.12.9)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단어 Christ와 성찬식이 이루어지는 예배를 지칭했던 영국말 mass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란 예수님의 삶 특히 십자가의 구원사건을 생각하면서 진지하게 고백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가리킨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12월 25일 풍속도로 두 개의 크리스마스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을 영어로 발음하면 ‘Christmas’와 ‘X-mass’이다. ‘X-mass’의 ‘X’라는 글자는 영어의 알파벳 문자 중에서 24번째에 해당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수학시간에 배운 바대로 하면 ‘아직 밝혀지지 않는 답’을 ‘X’라고 표시하고 그 답을 찾아냈다. 그런가 하면 아예 틀린 것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부호가 ‘X’(가위표)잖아요. 그렇다면 ‘X-mass’는 크리스마스의 핵심인 예수님이 없거나, 크리스마스의 참 뜻이 빗나가 둔갑했거나 구세주를 만난다는 점에서 정확하게 미지수인 그러한 예배행사인 것이다. 어느 교회의 청년은 이런 일기를 썼단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신나게 밤을 새우면서 놀다가 새벽에야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은 건너뛰고 성탄절 낮에 예배당으로 가서 성탄감사예배를 드리고 다시 여자친구들을 만나 술독에 빠져버렸다.”

오늘 날 크리스마스는 교회보다는 백화점의 장사꾼들이 더 좋아하고, 예배자들 보다도 술꾼들이 훨씬 환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장사꾼들이나 술꾼들이 선호하는 크리스마스는 정답이 아닌 ‘X’-mass’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옛 17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확실한 성령님의 임재를 추구한 퀘이커신도들은 1640년부터 크리스마스 때 어떠한 행사도 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오늘 날처럼 둔갑한 ‘X-mass’ 성탄절을 예방시키는 참 슬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진다.

아무튼 저와 여러분은 크리스마스가 ‘X’-mass’로 무섭게 둔갑하는 아니 이미 둔갑해 자리 잡은 세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만이라도 마가복음 제1장의 설교본문을 되새김질을 해 본다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이다. 특히 세태적으로나 시기적으로 꼭 필요한 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왜 그런가? 오늘 설교본문의 핵심은 우리 예수님이 오시기 좋게 준비하라고 하였기 때문이다(2-3 ‘너희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3下>).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X’-mass’를 크리스마스로 되돌리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으로 실존한다. 예수님이 살아 활동하시고 그 활동하심은 치료요, 회복이며, 승리이고, 언약의 성취,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그래서 구원으로 요약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성탄절을 우리만이라도 만들어보라는 선언이시다(아멘!!!이 쏟아져야 함).

영국화가 William Holman Hunt(1827-1910)는 계 3:20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우리 주님이 문을 두드린다는 말씀에 영감을 얻어 ‘세상의 빛’(The light of world 1904 작)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림을 그렸는데 영국 런던의 성 바오로 성공회 대 성당에 걸려있단다. 이 그림을 화가이자 그림평론가인 존 러스킨이 “전 세대에 걸쳐 그려진 성화 중에서 가장 숭고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극찬했는데 이 그림을 좀 설명하면; 별빛과 달빛이 아직 남아있는 이른 새벽을 배경으로,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한 손으로 등불을 들고 대문을 두드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대문 바로 앞은 덩굴과 잡초로 무성해져 있다. 또 대문에 문고리가 없는 점도 특이하다. 그러므로 대문을 두드리고 서 있는 분이 예수님이시지만 그 대문을 열어야 할 사람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 집 주인의 몫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문이 덩굴과 잡초 속에 있다는 것은 집 주인의 마음상태를 그대로 보여 준 것이다. 그 대문을 열고 드나듦이 없었음을 설명해 준다는 점이다.

헌트는 ‘The light of world’라는 그림을 통하여 현대인의 믿음실태를 폭로하고 크리스마스를 ‘X’-mass’로 둔갑시켜버린 이 세대를 예언하였다고 본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보면 우리 예수님을 제자리로 모신다는 게 그렇게 쉽지 않았음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저와 여러분은 오늘 설교본문에 귀를 기우려서 예수님 중심, 예수님이 제일 되시는 성탄절문화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설교본문이 보여주고 있는 세례요한처럼 하면 된다. 세례요한은 어떻게 하였는지 함께 확인하여 보자.

1) ‘기록된 것과 같이’(3)

‘기록된 것과 같이’라는 말씀은 ‘성경말씀대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좀 더 정확하고 책임감 있게 설명하려면 2절 3절을 천천히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것 같이 읽는 게 필요하다. 그러면 성경은 하나님의 계획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고, 따라서 성경을 읽는 사람은 그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내 동참하는 게 진짜 순종이고 충성인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성탄절도 마찬가지이다. 3절 끝부분에 기록된 대로 ‘곧게’ 하는 것이 성탄사명이다. 예수교전문용어로 ‘회개’이다.

교통경찰관이 신호를 위반한 차를 세웠다. “신호위반하셨습니다. 면허증을 보여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너무 황급히 서두르다 면허증을 챙기는 것을 깜박 잊었습니다.” “그럼 이름, 주소, 직업을 이 종이에 적어주십시오.” 잠시 후에 경찰관이 종이를 받아보니 이름: 막사이사이, 주소: 대통령궁, 직업: 대통령이라고 적었더란다.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필리핀 제7대 대통령(1953)이었는데도 교통경찰관에게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였고, 벌금도 정확하게 완불하였단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막사이사이 대통령처럼 한다면 멋진 회개를 하는 것이요, 성탄준비와 성탄문화를 우수한 수준으로 잘하는 것이 된다. 아멘.

2) ‘광야에서’(4)

광야는 사막과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 사막은 전혀 수분공급을 할 수 없어 식물이 살지 못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광야는 아침에 이슬이 내리고, 드물지만 때로는 비도 오기도 해서 식물이 조금씩 살고 있는 땅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아갈 주거환경으로는 험악한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성탄준비를 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대로 해냈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광야’라는 의미는 ‘편리주의’와 반대이고 ‘성공률 중심’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는 ‘미련한 짓’이다.

바울은 십자가가 미련한 것이라고 밝혀놓았다(고전 1:18, 22-23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광야에서 성탄준비를 하였다는 사실은 인기위주, 박수위주, 사탕위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준다. 저와 여러분도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생명 살리는 성탄문화를 만들어보자. 아멘.

3) ‘오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5)

이 말씀은 세례요한이 특정인에게만 특별지역에 비위를 맞추는 그러한 성탄준비를 하지 않았음을 웅변해 준다. 자칫 잘못하면 성탄절에 끼리끼리 보내기 십상이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all the people of Jerusalem. ὁι Ἱεροσολυμιται παντες 호이 이에로솔루미타이 판테스)이란 남녀노소, 빈부귀천, 농촌도시, 미녀추남, 키다리나장이... 전혀 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옛날 이태리 봄베이 시에서 믿음이 독실한 사람들이 바친 제물들이 이상하게도 제단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일이 생겼단다. 사라진 제물은 설탕이었다. 관리자들이 며칠 동안 감시하였지만 설탕을 훔쳐가는 사람을 목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설탕제물은 계속 없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랜 관찰 끝에 결국 범인을 잡게 되었단다. 그 범인은 개미였다. 개미들이 설탕을 한 덩이씩 물고 기어가는 기다란 행렬을 찾아낸 것이다. 개미의 굴까지 거리는 상당히 멀었지만 개미 수천마리가 참여하니까 설탕부대도 옮겨가더라는 것이다. 개미는 매우 작고 힘없는 동물이다. 그러나 수천마리의 개미는 막강해졌다.

미국 LA에 있는 어느 한인교회의 장로님이 점심시간이 되면 솔선해서 식당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밥과 국을 나르더란다. 처음에는 교인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달이 바뀌자 젊은 집사님들이 같이 하겠다고 동참하고 나서더니 교회의 분위기가 확 바뀌더니 훈훈한 교회란 소문이 퍼져나가 교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해서 대형교회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자원 동참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자 이제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확인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챙겨들자. 그것은 명품 성탄준비요. ‘X’-mass’를 크리스마스로 되돌리는 성탄절이다. 저와 여러분은 ‘X’-mass’ 풍조를 거슬러 크리스마스!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성탄문화를 이어가면서 회복시키고 번지게 할 수 있기를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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