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12월3일설교

December 3, 2017

                                                “왕의 보좌관들아!” (대상 27:25-34 ‘다윗 왕의 참모들’) 17.12.3.

    지난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31초에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경주 지진(5.8. 2016년)에 이어 ‘역대 2위’라고 한다. 경주지진과 포항지진은 수치상 0.4 차이인데, 에너지 상으론 거의 4배차이라서 체감공포는 역대최고이었고, 피해상황도 엿가락처럼 휘어진 다세대 주택, 피사의 사탑처럼 기운 아파트, 학교건물에 균열이 생겨 수능시험도 연기되었다.

   우리나라 사회구석 곳곳에 번져있는 기본을 무시한 관행을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가 사실로 이미 입증해 주었기에, 포항지진은 국민을 더욱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포스텍 건물은 30년 전에 지었음에도 이번 지진에 아무런 피해도 없어서, 무엇이든 원칙대로만 하면 나도 너도 사회도 평안함을 이번 지진을 통해 산 교훈으로 보여주었다. 박태준 전 회장이 강진을 견디고 1000년 갈 건물을 짓자며 매일 공사현장을 돌면서 표준원칙을 고집했을 때, 당시 우리나라는 지진발생도 약했고, 내진설계기준도 없었던 시절인지라, 주변에서는 너무나 호들갑 떤다고 비아냥거렸다는데, 이번 지진에 포스텍건물이 멀쩡한 모습을 보여줘서 원칙과 기본의 절실함을 제대로 웅변한 셈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국내에 발생하는 지진정도라면 굳이 내진설계를 하지 않았더라도 이토록 맥없이 기울 수 없다고 지적한 것처럼, 문제는 구조설계와 시공과정이 기본원칙을 따르지 않았기에 피해사항이 커졌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원칙을 지켜가는 게 왜 이토록 어려운가? 그게 수재들의 두뇌가 요구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첩한 순발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교과서대로만 하면 되는데 그것을 쉽게 행하지 못하고 마는 것은 꾀돌이 짓을 유능하다고 묵인하는 버릇 때문이다.

   지금 대통령도 취임식 때에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세상’을 외쳐야 했듯이, 지금 우리사회가 기본원칙과 상식을 마구 저버려 온 것은 비록 건축만이 아니기에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세상’을 대통령의 취임식사로 국민을 공감시키려 했겠지요. 정치인들은 기회주의속성에 절어 있다지만 공무원이나 교수, 심지어 성직자사회까지도 자정능력이 소멸되는 밑바닥까지 보여주고 있어서 ‘상식과 원칙’은 이현령비현령으로 굴러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공동체는 공통의 선한 가치와 공유하는 행복함을 위하여 객관적인 상식과 원칙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식과 원칙은 각자의 권리와 의무도 함께 지켜지게 하는 그 공동체 속에서 전통약속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러한 상식과 원칙을 스스로 무시한다면 공동체의 변질을 자증(自證)한 셈이다.

   생각해보자. 물렁물렁한 땅인데 나무가 뿌리를 대충 얕게 내리면 태풍 때는 십중팔구 넘어지고 만다. 당장 성공하는 조건이나 방법을 선택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무지막지한 바람이 불 때 다소 흔들리다가 휘어져도 다시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 대나무처럼 속을 다 채우지 못했을지라도 마디로 세상풍조들을 이겨내고 매사에 자기 신앙관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지금 우리의 신앙인생이 어떠한 지진에도 넘어지지 않는 믿음중심을 갖추고 살아갈 위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설교본문을 묵상하고 있으면 다윗 왕의 신앙중심 즉 삶을 만드는 신앙관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 읽고 온 교우들은 다 아는 내용이겠지만, 설교본문은 다윗 왕의 개인 사생활에 관한 것을 크게 두 가지 재산관리와 최측근 참모들로 나누어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우선 첫 소감은 보통이상으로 구체적이고, 재산도 많았고, 무척 유능한 사람들을 골라 그 직무를 맡겼다는 점이다. 이 점을 우리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셨을지 확인하여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또 반드시 필요한 바인데, 하나님은 신 17:14-20에 하나님의 뜻을 밝혀놓았다. ① 하나님이 선택한 왕(15). ② 이스라엘사람. ③ 말을 많이 두지 말라(16). ④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17). ⑤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 ⑥ 율법서를 공부하여 경외하라(18). ⑦ 교만하지 말라(치우치지 않는 정로. 20).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은 대충 몇 가지만 맞춰지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주일 예배당에서도 중요하지만 집무실과 가정, 쉼-테크(휴식tech)도 올바르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를 조금 다녔다 하는 교인들도 확실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성경내용 중 한 곳이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이다.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가? 이다.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삼았고, 아벨은 ‘양과 기름’을 제물로 삼았기에 그랬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하나님도 식물보다 고기를 더 좋아하신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신학자들은 ‘양과 기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설명하지만 어려운 설명이다. 그런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2 )라고 기록해 놓았다. 이 말씀은 아벨이나 가인이나 똑같이 자신의 노동의 열매를 제물로 바쳤음을 말해준다. 하나님은 식물도 괜찮고 동물도 상관없으시다는 것이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창 4:7)라고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책망하고 계셨다(יטב  야탑 good, adjust, cheerful).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예배 중심이, 신앙고백이 달랐다는 것임!).

   하나님께 책망을 들었던 가인이 참회하였더라면 즉시 돌이키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예배를 드렸겠지요! 하지만 책망을 들으면 반성을 하기보다 “나 더 삐질 거야” 하고 한참 반발한다. 이런 게 교만이다. 

자 그러면 교만지적을 착각하고 더 삐지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다윗왕이 본문에서 답을!

    1) 12반(25)

    25-30절까지는 다윗 왕이 자신의 전 재산관리를 12개 반으로 나누고 전담 책임자를 임명한 사실과 그 책임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12개 반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24,000 = 2,000x12, 6,000 = 500X12<23:4>, 24 = 12x12<24:18>, 288 = 24x12<25:7>, 27,00 = 225x12<26:32>, 24,000 = 12x12<27:1> 12배수제도에 아주 필이 꽂인 왕이 다윗이었음이 분명함! 12는 3x4<하나님 숫자 x 동서남북 = 완전수>. 다윗 왕의 마음을 항상 사로잡고 있었던 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전함!).

   사람들은 대개 오늘의 어려운 고통을 견디면서 내일을 기다린다. 우리의 삶에서 기다림이 없어질 때 그것은 절망이다. 만일 절망뿐이라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기다림이 있기에 꿈꾸며 노력하고, 기다림이 있기에 고난 중에서도 인내하게 된다. 누구든 무엇이든 기다린다면 바로 그 삶은 값진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다림이 없는 삶이라면 그것은 벌써 죽은 시간이다.

    이 기다림을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희망사항’이란 막연한 바램이다. “좀 나아지려나?” 하는 생각인데,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 아무런 보장도 없는 우연을 기다린다. 그러나 ‘산 소망’이라는 기다림은 객관적 약속이 있고 그 내용을 꿈꾸는 삶이다. 결정적인 미래로부터 주워지는 바램이기에, 눈에 보였던 과거나 현실이 나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 기다림의 내용이 현재의 나를 변화시키고 있고, 미래의 존재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현재는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이다. 이 소망은 이 세상의 삶을 마치는 순간에 이루어져, 받아본 자만이 아는 위로될 삶이 있다는 약속이지요.

   오늘부터 우리는 대림절(待臨節) 또는 대강절(待降節)이라고 부르는 교회절기에 들어갔는데, 대림절은 성탄주일 직전까지 4주 동안 글자그대로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그 오심의 의미를 생각하고, 우리 삶을 정리하여 맞추는 시기이다. 그래서 예수님과 한층 더 연합하는 사건을 기다리고 만드는 것이다. 우리 모두 다윗 왕처럼 예수님과 온전히 겹쳐지는 주일이요 엿새요 가정이길 축복한다. 아멘.

   2) 참모들(32-34)

   32절부터는 다윗 왕 자신의 최측근 참모들을 기록해 놓은 말씀인데, 요나단과 아히도벨, 아비아달, 요압이 금방 눈에 띤다. 우선 요나단은 다윗 왕의 조카로서 다말의 성폭행 사건의 속임수를 제공할 정도로 간교한 사람이었다(삼하 13:3). 그리고 아히도벨은 정말로 신령했지만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했다가 망했던 인물이었다(삼상 16:23, 15:12, 17: 23). 요압은 압살롬의 목숨을 살리라는 명을 받았음에도 일부러 살해해버린 군대지휘관이었다(삼하 18:5,14). 이 세 사람만 보아도 심복충신 신앙인을 곁에 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소년 다니엘은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가서 바벨론제국 왕립 관리양성학교에 선발됐다. 왕립학교답게 식사는 왕이 먹는 수준이었지만 다니엘과 그의 동료 3명은 결심하였다. ‘포로 신세에 왕궁음식에 길들여지면 자신도 모르게 조국을 잊고 결국 하나님까지 등지고 국적도 신앙도 잃어버린 망국인으로 떠돌고 말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우리의 신앙을 지켜나가야 한다!’라고 생각한 끝에 3가지 실천항목을 다짐하였다. ① 무조건 산해진미를 거절하고 채식을 한다. ② 어떤 포도주라도 마시지 않는다. ③ 매일 기도시간을 갖는다. 이걸 실천했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어떻게 됐나?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단 1:17)

   다니엘과 친구들은 십대 청소년들이었지만 신앙관으로 삶을 선택한 그 결과 지식과 지혜, 명석한 판단력을 얻었고, 또 다니엘은 비전(理想)과 드림(꿈)에서 탁월한 인재로 돋보이게 되었고, 결국 다니엘은 소년포로 신세였지만 3대 왕권 총리직을 역임하는 불세출의 인물로 자리 잡았다. 지독하다 하리만큼 보통이상으로 신앙중심을 하나님께 맞추면 하나님은 기적으로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많은 실례가 성경에 있다. 체험해 보길!

    3) 자원(31)

    ‘다윗 왕의 재산을 맡은 자들’은 12명이었는데, 이들은 누구보다도 다윗 왕의 속마음을 훤히 읽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돈거래를 해보면 훨씬 자세히 속 양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윗 왕은 아들 솔로몬의 성전건축 준비를 위해 사유재산을 엄청나게 헌금하였다(29:3-4. 금 102t, 은 238t. = 22:14, 28:11. = 백성을 자원시키는 증인들이 재산관리자 12명의 입소문은 자연스러웠을 것임!<29:9>).

    중세기 폴란드 왕 에릭은 바사공작을 지하 감옥에 가두었단다. 이유는 반역 주동자라서 종신형에 처한 것이었다. 바사의 종신형에 큰 충격을 받은 바사의 아내 카타리나는 왕을 찾아가 간청하였다. “폐하, 저는 제 남편과 한 몸이오니 저도 남편과 함께 복역하게 허락해주십시오.” 에릭 왕은 거절하길 “바사는 대역죄인이니 지금은 공작도 무엇도 아니다. 부인은 이제 부부에 연연하지 말고 새 인생을 살도록 하라.” 그러자 카타리나는 정색을 하고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 왕에게 보이면서 대답하였다. “폐하, 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반지에는 ‘모르스 솔라’(Mors sola)라고 적혀있었는데, 이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뜻이었다.

   결국 카타리나는 17년 동안이나 남편과 함께 고통스러운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석방된 것은 에릭 왕이 죽고 난 뒤였단다. 에릭이 더 오래 살았더라면 아마 그들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감옥생활을 하였겠지요. 죽음이 갈라놓을 때가지 순종할 신앙중심이라면 다윗 왕처럼 헌신하고 자원을 이끌게 된다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그런 신앙생활에 도전해보길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핵심이 가리키는 화살표를 보자. 다윗 왕의 개인관리! 완전수 중심, 심복신앙인사모, 헌신으로 자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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