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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2일 설교

DaumEditor Wygiwyg Panel

“신령한 찬송을!” (대상 25:1-7 ‘신령한 노래’) 17.10.22.

어느 집사님 댁에서 어린 아들이 장난감블록을 가지고 무언가를 골똘히 만들고 있기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아들에게 “무엇을 만들고 있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아들은 엄마에게 “지금 예배당을 만들고 있는데 예배당에 가면 조용히 해야 돼요.”라고 하더란다. 사실 엄마는 주일예배 때마다 아들을 교회로 데리고 가면서 아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말을 해주곤 하였는데, 이제는 아들 스스로 조용히 할 것을 말하니 기특해서, 엄마는 흐뭇한 마음으로 미소를 짓고 아들에게 “교회에서는 왜 조용히 해야 하지?”하고 물어봤더니, 아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 어른들이 다 잠을 자기 때문이에요.”

집사님의 어린 아들이 기억하고 있는 예배당은 설교를 들으면서 잠을 자는 장소였던 것이다. 어린 아이가 ‘교회’ 하면, 어른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조는 모습을 떠올릴 정도로, 한국교회는 예배당에서 설교를 많이 듣는다. 맞다. 한국교회는 예배당에서 행하는 일 중에 설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예배를 강조하는 목사님과 교인들의 입장일 뿐,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중요시 한 게 따로 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시 한 것은 ‘하나님, 지난 한 주간도 주님의 은혜로 잘 살다 왔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나님께 감사고백을 찬양으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설교를 잘하는 예배보다, 하나님께 감사함을 찬양으로 영광되게 올려드리는 예배이다.

그래서 다윗 왕은 아들 솔로몬 왕이 웅장하게 건축할 성전에서 찬송이 그치지 않게 아예 찬양대를 24반으로 조직했는데, 그 모습을 기록해 놓은 게 오늘 설교본문이다. 지금 저랑 같이 그러한 다윗 왕을 살펴보자(1 ‘신령한 노래’는 다윗 왕이 꿈꿨던 찬양대가 부를 찬송이었음. הנביאים 하네비임 = נביא<prophet>의 복수형 ‘who should prophesy with harps’-NKJV-.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 전문가들이나 찬송꾼들이 아닌 이스라엘 국민이 부르는 찬송을 구별하시고 함께하신 하나님!>,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삼상 16:23>. = 다윗 왕은 찬송의 권능을 이미 체험했고, 그 찬송의 권능을 살려서 아들대대로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이러한 다윗 왕을 칭찬할 수밖에 없는 것은<‘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대하 20:22>,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대하 20:12> 속수무책 상황!). 찬송을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제대로만 하면 필승하는 전술이요 압승하는 무기라는 것을 다윗 왕은 체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기에 ‘신령한 노래’(הנביאים<prophets>) 찬양대를 조직했던 것이다.

어느 교회는 예배 중에 찬송을 부를 때 꼭 일어나서 오른 쪽을 보고 찬송하더란다. 그래서 그 교회에 등록하려던 집사님이 이상해서 교인들에게 물었더니 “처음부터 그렇게 하니까 따라하고 있다”는 대답 외에 다른 설명을 듣지 못했단다. 목사님께 묻기는 좀 거북해서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물어도 비슷한 대답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요양원에 심방을 따라갔다가 백세 넘은 권사님께 정답을 들었는데 그것은 “옛날 교회 초창기 때 찬송가도 성경책도 없던 시절에, 목사님이 찬송가를 크게 써서 오른 쪽 벽에 써 붙여 놓고 찬송을 불렀는데 그 습관을 지금도 따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용 알맹이가 빠져있는 찬송은 거룩하지 못하다.

우리는 복음성가 “주만 바라볼지라”를 수없이 불렀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 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이 찬송을 그냥 부르지 말고 내용과 사실을 알고 시인하면서 고백하는 찬송을 올릴 때 찬송의 권능을 체험케 하신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다윗 왕이 체험하고 자손대대로 누리도록 꿈꿨던 그 찬송권능을 오늘 설교본문을 통해 배우고 우리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보자.

1) 지휘(2)

‘지휘 아래’(לע ידי 알 예데 under the care<guidance, direction> of any one<아삽,여두둔,헤만,왕>=하나님계획을 드러내는 예언찬송이 되도록 아름답게 협력 일치 조화! ≠ 자기 기분대로 자기 뽐냄<주장, 고집>).

1978년 4월 영국여성들은 가장 칭찬받을 여자로 에반젤린 부스(Evengeline Booth) 여사를 선출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1865년 구세군 창시자 윌리암 부스(William Booth)의 넷째 딸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말씀순종 하는 일에 남다르게 강하였고, 어린 나이 때도 빈민굴에서 살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봉사하였단다. 이미 23살 때 구세군 사관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될 정도로 적극적인 신앙실천가이었고, 나중에 캐나다와 미국, 유럽에서 구세군사령관으로 오직 복음과 봉사를 위해 전심전력을 쏟아 부었단다.

그녀는 70세에도 구혼청원을 받았을 정도로 많은 남자들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신기록을 기록했지만, “자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였기에 누구와도 결혼할 수 없다.”라는 강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반젤린 부스, 그녀는 86개 나라의 굶주린 사람들을 도우며 오직 주의 사랑을 전하면서 일생을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는 일에 헌신하였단다.

다윗 왕이 생각했던 지휘란 게 바로 이런 거였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볼 수 있게 하는 찬송을 올리도록 לע ידי (under the care<guidance, direction> of any one)하는 거! 저와 여러분의 찬송도 לע ידי (지휘아래)에서 받쳐지길 축복한다. 아멘.

2) 감사(3)

‘여호와께 감사하며’(הודות 호도트 ידה의 inf<to give thanks, to confess openly and freely. =위대함을!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I will praise the name of God with a song, and will magnify Him with thanksgiving, -NKJV, Amf-’ ‘will proclaim his greatness by giving him thanks.’ -GN-. 시 69:30-31. 하나님의 크심, 중대함, 훌륭함을 드러내는 감사를 하면서 찬송하는 게 다윗 왕이 구상했던 찬양대였음).

어느 처녀가 불신자 남편에게 시집와서 늘 술시중을 하기가 힘든 고역이었다. 하루는 남편이 만취해서 어지러 놓은 것들을 대충 정리하고서 곯아떨어진 남편 옆에 앉아 기도를 하려는데 신세타령부터 나오더란다. “하나님, 저는 언제까지 이 모양으로 살아야 할까요?”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탄식기도를 드리는데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나더란다.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그래서 기도를 바꿨단다. “하나님, 감사할 일은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좌우지간 감사하렵니다.” 그 순간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 “그래도 과부신세는 면했지 않는가? 남편은 저 꼴이지만, 언젠가 사람이 될는지도 모르고, 고주망태가 되어도 제 집 찾아오는 것 하나는 신통하고, 토요일마다 술에 떨어져서 주일은 꼼짝 못하고 누워서 집을 보니까 마음대로 교회갈 수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니 감사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란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웃고 있는데, 남편이 눈을 떴다. “왜 밤중에 혼자 앉아서 실실 웃는 거요?” “당신한테 시집온 게 고마워서 그래요.” 그 부인은 감사하게 생각했던 것을 하나하나 말해줬더니 다 듣고 난 남편이 “나도 교회 나가 줄게.” 그래서 그 부인이 이렇게 간증했단다. “내가 10년을 기도하여도 응답을 하지 않으시던 하나님께서 단 한 번 감사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감사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체험을! 아멘.

3) 말씀(5)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왕의 선견자’란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란 뜻이다. 그러니까 설교말씀과 하나님께 올리는 찬송이 조화될 때 ‘신령한 찬송’이 된다고 다윗 왕은 생각하였던 것이다.

스펄젼 목사님은 40대부터 통풍 때문에 몹시 시달렸단다. 진통제도 귀한 시대라서 통풍이 시작되면 그 통증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는데, 어느 날 통풍고통 때문에 누워있는데 집사님이 문병을 오셨다가 이렇게 목사님께 물었단다. “목사님, 통풍으로 몹시 아플 때 하나님께 감사하시나요?” “아니요, 감사하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만, 이 통증이 사라지면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그 집사님은 잠시 침묵하다 무겁게 입을 열고 “목사님, 못 견디게 아플 때 하나님께 감사해 보세요. 오히려 그 아픈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사 찬송해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설교와 일치하지 않나요?” 스펄젼 목사님은 집사님의 진심어린 충고에 멍 때린 충격을 받고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목사자신을 진지하게 회개했다고 글로 남겼단다.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찬송과 기도? 누구든 범하기 쉽다.

4) 배워(7)

‘배워 익숙한 자’(מבין 메빈 be able to discern 분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춤! ‘익숙한’ מרמד메루마데 well verse, be instructed. 온갖 악기로 찬송해도 좋다. 단 숙달된 자! ≠ 몇 번 들어봤음, 해봤음).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어느 교회학생들이 수련회를 가다가 교통사고로 많은 학생과 전도사 2명이 현장에서 사망한 적이 있었단다. ‘댈러스 모닝뉴스’에 크게 보도됐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신문기자가 죽은 학생의 아버지께 물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심정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눈물을 닦으면서 아버지가 대답했다. “사랑하는 아들과 헤어졌으니 슬픔이야 말할 수 없지요. 하지만 16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만날 소망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은 다 생각대로 되지 않죠. 그럴 때 피눈물 중에도 진정한 감사를 배운 대로 하는 자가 신령한 찬송을!

자 이제 우리자신의 삶을 올려놓을 오늘 설교말씀의 가르침을 붙들자. 오늘 설교는 온갖 악기와 방법으로 신령한 찬송을 하나님께 드릴 찬양대이다. ‘지휘아래’, ‘감사함과 함께’, ‘말씀과 조회되게’, ‘배워 익숙하게’ 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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