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5일 설교

October 15, 2017

                                             “뽑힌 자입니다!” (대상 24:20-31 ‘섬기는 일꾼의 의미’) 17.10.15.

   2차 세계대전 전쟁 중에 영국군의 한 전투기 조종사가 독일군전투기 한 대를 격추시켰는데, 영국군 조종사는 적기가 평지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적군조종사의 죽음상태가 염려되어서, 적기를 향해 착륙한 후에 살펴보았더니, 독일군조종사는 죽었고 조종사의 몸에서 편지와 함께 사진 한 장을 찾았는데, 그 사진 뒷면에 “너의 어머니로부터”라는 말이 적혀 있더란다.

   전투를 끝내고 부대로 안전하게 돌아온 영국군조종사는 전사한 독일군조종사사의 어머니가 생각나 그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는데, 편지의 내용에 “자신이 아들의 전투기를 격추시켰는데 아들조종사에 대한 분노나, 죽이고 싶은 원한 때문도 아닌, 전쟁이라는 잔인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어서 아들을 죽이게 되었으며, 또한 자신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죽은 아들의 심정에 사로잡혀서 어머님께 이 편지를 쓰는 것”이라고 밝혀드렸단다. 그 편지가 중립국을 통해 독일의 그 어머니에게 전해졌고 그 영국군조종사는 답장을 받았는데 내용은, “보내준 편지를 받기 전에 이미 아들의 전사소식을 알고 있었고, 여느 때 같으면 당신을 원망하였겠지만 편지를 읽어보니, 죽은 아들이 소생하여 이 어미에게 사망사연을 설명한 편지를 읽어준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과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전쟁이 끝나 평화의 때가 되면 자신을 어머니로 여기고 꼭 찾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사진에 쓰여 있던 필체로 “너의 어머니로부터”라는 말이 적혀 있더란다.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살인전쟁터에서도 훈훈한 용서와 화해를 꽃피운 감동어린 대화이다. 영국군조종사와 독일군조종사사의 어머니가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였다면 서로 간에 용서화해는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시도하니까 웬수가 친 아들로 용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나 자신의 입장보다는 상대를, 상대보다는 하나님의 계획실현에 무게중심을 두는 성전봉사 제도를 다윗 왕이 마련하는 모습인데, 특별히 레위자손들이 제사장을 돕는 성전봉사에 관한 내용이다(20). ‘레위 자손 중에 남은 자’라는 말씀은 ‘삼만 팔천 명’을 의미하는데(23:3, 27-32. ‘성전과 뜰과 골방에서’ 청소하고, 떡을 반죽하고 굽고, 저울질하고, 찬송하는 일 등등인데, 한 마디로 제사장의 도우미, 조수, 손과 발의 역할 하는 봉사자였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도 지속되었음).

   어느 날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고 하는데 어린 아들이 따라가겠다고 칭얼댔다. 그래서 증자의 아내가 아들을 따돌리려고 이렇게 말했단다. “아들아, 엄마를 따라오지 말고 집에서 놀고 있으렴. 그러면 엄마가 시장에 갔다 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는 요리를 해주마.” 아들은 당장 떼쓰기를 멈추고 얌전하게 아버지 곁으로 가서 혼자 놀더란다.

   얼마 후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왔는데, 증자가 돼지를 잡고 있었고, 어린 아들은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내는 깜짝 놀라며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왜 돼지를 잡는 거요?” “아까 부인이 돼지를 잡겠다고 아들한테 약속했잖소.” “그건 그냥 애를 달래려고 했던 건데, 어쩌자고 정말로 돼지를 잡습니까?” 증자가 진지하게 아내에게 말했다. “아들에게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되지요. 자식들은 무엇이든 부모님을 흉내 내면서 배우기 마련인데, 어머니가 자식을 속이면 그 자식은 필연 엄마의 말을 믿지 않을 터, 부인은 훗날 무슨 수로 자식을 가르치겠다는 것이오?”

   약속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약속의 중요성을 지식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을 반복하여 몸으로 배우도록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모범을 보여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약속실천은 소망성취이고 믿음확인이며 사랑축적이다. 성전봉사의 도우미, 조수, 손과 발의 역할봉사자도 소망성취이고 믿음확인이며 사랑축적이다.

   바울이 두 번째 전도여행 때 실라와 함께 아시아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마게도냐 사람이 손짓하는 환상을 보고 당장 방향을 바꾸고 직행했더니 그 첫 성이 빌립보였고, 빌립보 전도는 여호와 이레처럼 잘 풀려나갔다. 기도처를 찾다가 자주 옷감장사 루디아란 부자를 만나서 그 집 가족을 다 세례주자 숙식을 책임져주었고, 또 귀신들린 점쟁이까지 고쳐주었다. 그러자 점쟁이 주인이 고발해서 많은 매를 맞고 옷도 찢어지고 감옥에 갇혀서 차꼬에 채워졌다. 그 밤중에 바울이 찬송을 부르면서 기도했는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는 바람에 결국 간수의 가족을 전부 전도하고 세례식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찬송을 부르면서 기도했을 때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렸다고 했는데 사실은 바울의 도우미 역할을 기가 막히게 제대로 해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실라이었다. 성경을 직접 읽어드리겠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그래서 그 유명한 전도지 말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말씀이 생긴 거다. 도우미역할 봉사를 우리 하나님은 그토록 크게 보신다는 거다. 아멘!!!

   자 그러면 오늘 설교본문을 좀 더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다윗 왕이 만든 도우미 봉사의 비결(비밀원리)을 지금부터 다 같이 좀 꼼꼼하게 확인하여 시도해 보고 우리도 체험을 해보자. 아멘.

   1) 다름(31)

   ‘장자의 가문과 막내 동생의 가문이 다름이 없더라’ 다윗 왕의 성전봉사 제도를 설교하면서 누누이 강조해왔던 말씀 중에 하나인데, 교회봉사에는 상하서열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역할만 중요시 된다. 이 사실을 바울은 몸의 지체원리로 신약성경에 설명하여 놓았고,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임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로마서 11장 13절에 밝혀놓았다(‘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또 빌립보서 4장 12절 13절에서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병실에서 20년 동안 환자를 돌보면서 특히 수많은 임종을 지켜봤던 어느 간호사가 말하길; “일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남기고 간 말들 중에 ‘좋~은 집에서 좀 살아봤으면 좋았을 것을, 더 많은 돈을 벌었으면 좋았을 걸, 더 좋은 차를 탔더라면 좋았을 걸,’ 이런 말들은 아무도 하지 않더라. 바램은 단지... 아주 소박한 것들이었는데; ‘내 자식들과 좀 더 놀아 줄 걸, 좀 더 많이 여행을 다닐 걸, 좀 더 많은 시간을 내서 가족과 함께 식사할 걸’이었습니다.” 지금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좀 더 믿음 소망 사랑을 공유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이 성전봉사의 도우미역할도 좀 더 믿음 소망 사랑을 공유하게 할 수 있다. 아멘.

   2) 제비(31)

   ‘제비 뽑혔으니’ 누구나 이미 경험해 보았을 방법이다. 제가 군복무를 할 때는 병사들이 심심하면 제비뽑기를 해서 간식을 사 먹곤 하였다. 재미있는 방법인데 문제는 원하지 않는 결과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데 있다. 그러데 간식 정도야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자리를 결정하는 제비라면 이유 없이 승복하게 사람의 욕심이 그냥 놀고 있지 않는다. 그런데도 다윗 왕이 제비제도를 성전봉사에 도입한 것은 신앙관에 따라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16:33 ‘The lot is cast into the lap, but the decision is wholly of the Lord - even the events [that seem accidental] are really ordered by Him.’ -Amf-  이렇게 시인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세계에서만 통하는 방법이 제비임. 제비뽑기 성전봉사는 순전히 믿음위주로 살아가는 사람들만 가능한 봉사방법인 것임!).

   믿음과 철저하게 담을 쌓는 집이 욕(慾)씨인데 욕씨네는 세 식구가 살고 있다. 첫째는 욕구(慾求)이다. 사람에게 없으면 큰일 날 존재이지요. 필요 유익함을 자타가 공인하는 존재이다. 식욕, 성욕, 성취욕이 욕구 친구들이다.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없지요. 사람이 꿈을 성취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함이고 보람인가! 수시로 뉴스로 등장하는 성욕도 사실은 종족의 보존과 번성이라는 막중한 방법이지요. 둘째 식구는 욕심(慾心)인데, 첫째와 달리 욕심이는 필수의 선을 넘어선 놈이다. 욕구는 없으면 심각해지는 존재이지만 욕심은 없어도 괜찮은 녀석이다. 욕심이네 친구들은 음식욕심이라는 식탐, 과도하게 몸을 아끼는 게으름, 쾌락만 만족시키는 색욕 등인데, 요즘 고위직국회청문회 때마다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소유욕이 바로 욕심이 단짝이다. 욕씨이네 막둥이는 욕망(慾望)이다. 욕구가 꼭 필요한 존재이고, 욕심이는 없어도 되는 놈이라면 욕망이는 있으면 망조만 만드는 흉악범이다. 욕망은 사람을 불타오르게 한다. 사람을 후회할 수 없는 파멸의 늪으로 유혹한다. 이 못된 놈의 친구들이 지배욕, 사치욕 착취욕등이다. 요즘 우리는 욕씨네 식구들 중 누구를 가까이 하며 살아가는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제비뽑기 성전봉사에 순종 충성할 수 있다. 아멘.

    3) 앞에서(31)

   ‘앞에서’라는 말씀이 가리키는 현장을 좀 세밀하게 살펴보면, 다윗 왕과 사독과 아히멜렉 그리고 그 후손들인 제사장들과 레위지파의 각 집안의 우두머리들이 모인 자리이었다. 다시 말하면 누가 봐도 객관적이고 정당성을 가진 합리적인 과정으로 제비뽑기를 하고 그 결과는 무조건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렸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두 마리의 개(犬)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이 두 마리의 개 이름은 ‘선입견’(先入見)이라고 부르거나 ‘편견’(偏見)과 그리고 한 마리는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이라는 개란다. 후자의 애칭은 ‘일견’(一見)이다. 직접 보지 않고 남에게 들은 얘기로만 상대를 판단하면 큰 착오를 범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일견’을 잘 키우면 ‘편견’ 즉 ‘선입견’을 쉽게 제압하고 정확한 지각으로 상대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저와 여러분은 항상 성경과 성령을 통하여 얻은 ‘일견’을 잘 키우면서 상대를 올바로 분별할 뿐만 아니라 성전봉사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순종이요 충성이게 해 가길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을 듣는 동안에 하나님이 자로 우리 자신을 재어서 보여준 그것을 챙기자. 축복도 말로 하고 저주도 말로 하며, 감사도 원망도 말로 한다. 모두 언어행위이다. 말은 곧 사람의 마음과 함께 표현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을 한 마디 할 때 우리자신의 속마음도 보여주는 순간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일지라도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 상한 자를 보듬고 버팀목이 되는 말, 기쁨과 희망의 불씨가 되는 말로 성전봉사를 해 보자는 것이다. 소망과 격려를 주는 말과 함께하는 교회봉사가 우리의 믿음생활을 진보시키고 천국의 상을 예비시키기 때문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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