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8일 설교

October 8, 2017

                                            “하나님 규례대로!” (대상 24:1-7 ‘섬기는 직분’) 17.10.8.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셀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함으로 자타가 인정하였던 유명한 지식인이 폐수종으로 입원하였다가, 입원한 한 달 동안 문자 그대로 발악을 하였는데,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신의 병명을 아내에게 묻지도 못했고, 아내도 남편에게 그 병명을 말해주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괴로워 울부짖던 이 사람이 글로써는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한 세기에 최고급 봉우리의 발자취를 남겼던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1905.6.21~1980.4.15)였단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였고,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지만 거절했다. 1980년 4월 15일 그는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자,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그토록 비참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언론들이 떠들기 시작했는데, 그때 어떤 독자가 한 신문사에 기고한 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추석에도 고향을 찾아가는 긴 차량행렬이 고속도로마다 장사진을 이뤘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그리고 그 고향은 변하지 않는 어머니의 품 같이 항상 자신을 받아줄 것 같은 포근함을 준다. 특별히 ‘고향’ ‘부모’ ‘가족’이라는 말은 위기를 당할 때나 몸이 아프거나 외로울 때 더욱 간절해진다. 그런데 우리가 일생이라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할 고향은 어떠한가? 돌아가게 될 고향이 없다면 사르트르의 마지막처럼 된다.

   오늘 설교본문도 천국본향에서 상받을  성전봉사제도의 시작 틀을 보여주고 있다(4). 이 말씀은 제사장 24명을 성전봉사 순번제로 정하고 임명한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 제도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솔로몬 대하 8:14, 바벨론 포로 후 느 9:39, 예수님 성탄 때까지도 눅 1:5).

   토마스 라우손 테일러(Thomas Rawson Taylor 1807∼1835)는 19세기 영국의 목사님이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정상목회도 힘들어 했단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전도위주로 목회하다가 1835년 3월 7일 아침, 하늘나라로 떠났는데, 그때 테일러 목사님의 나이 스물일곱 살이었다. 테일러 목사님은 짧은 생애를 살면서도 천국을 돌아갈 고향으로 삼고 살았음을 찬송가 479장으로 말해주었다. 3절로 지은 찬송가인데 매 절마다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라는 말로 끝냈다.

   1.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2. 광야에 찬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 너머 눈보라 세차게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3. 날 구원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리던 성도들 한자리 만나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저와 여러분은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어디로 돌아간다는 것인가? 천국이다. 천국은 확실한 우리의 본향이다. 이 세상은 아무리 멋지고 자랑스러워도 나그네 길이요 천국으로 가는 정거장일 뿐이다. 19세기 덴마크 실존주의 철학자 키엘케고르가 들려주었던 들오리 이야기를 들어보신 분들이 있을 거다. 지중해 해변에 머무르던 들오리 떼가 철따라 노르웨이 쪽으로 날아가는데, 덴마크 상공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어떤 집 뜰에서 집오리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들오리 떼 중에 한 마리가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자, 갑자기 날갯죽지가 아파 와서 혼자 내려앉았다. 집오리들은 그 들오리에게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고, 들오리는 그렇게 며칠을 지내는데 문득문득 ‘이래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접이 좋아 ‘조금만 더’ 반복하다가 다시 날아오르려 하니 그 동안 살이 쪄서 날아오를 수 없었다. ‘저들이 분명히 본향으로 가는 친구들인데!’ 탄성을 지르면서 날개를 휘저었지만 솟아오르지 못했다는.

   저와 여러분도 우리의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면 노르웨이 들오리처럼 우리의 본향인 천국을 놓치고 만다. 우리는 본향으로 가면서 잠시잠깐 이 땅에 머무르고 있는 나그네임을 명심하길 축복한다.

    ‘자살’라는 말을 순서를 바꾸어 써 놓으면 ‘살자’가 된다. 또 점 하나 차이로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말이 있다.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남’에서 점 하나를 지우면 내가 존중하는 ‘님’이 되는데, ‘포로’와 ‘프로’도 마찬가지이다. 프로는 어느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자유는 물론 존경까지 받는다. 그러나 포로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사상이든 무엇인가에 억매여 있어서 자유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돈이나 쾌락, 세상적인 취미에 빠진 채 살아가다가 그 삶에 자신도 모르게 지배당하고 포로 되어 마침내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다.   성경을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는 포로로 끌려간 나라 바벨론에서 프로가 되었고, 바벨론의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통치의 이인자로 당당하게 발탁되곤 하였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어떻게 프로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다니엘서 첫 장에 기록된 대로 첫째,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랐더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악조건에서 뽑혔다. 둘째, 다니엘은 타의 모범된 전문지식을 갖춤으로 실력자로 인정을 받았다. 셋째, 당대 최고의 지혜자로서 수준 높은 도덕성을 실천했던 신앙인이 다니엘이었는데, 정적들이 다니엘을 쓰러뜨리려고 온갖 흠을 찾았으나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이렇듯 우리도 영성과 전문성, 도덕성을 갖춘다면 어떠한 ‘포로’의 환경일지라도 ‘프로’로 발탁될 것이다.

   천국 상을 받게 하는 성전봉사를 다윗 왕이 만들었는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지속됐다. 자 그러면 다윗 왕을 좀 더 집중해서 살펴보고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가르침을 챙겨 우리의 믿음을 진보시켜보자. 아멘.

    1) 죽고(2)

    아론의 아들은 4명인데, 다 제사장이 되었지만 첫째와 둘째는 자식도 없이 요절했고 셋째와 넷째만 제사장 가문을 이루어갔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왜 생겼는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2. ‘다른 불’은 ‘쉽고 편리한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틀린’이란 뜻임). 왜 틀린 봉사를 하게 되는지 그걸 우리가 아는 게 중요하지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 오늘 날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가 만장일치라는 이름으로, 심지어 ‘목사님께 순종’이란 형태로 공공연하게 통용되고 있음!).

   부산에 있는 어느 권사님은 아들들이 자수성가하여 중소기업 대표로, 큰 회사 전무로 자랑할 만큼 꽤 잘 나가고 있었단다. 그런데 자녀들이 최신 아파트로 이사 가도록 권유해도, 그 권사님은 조그맣고 낡은 옛집을 계속 고집함으로, 어느 날 맏아들이 자녀들을 대표하여 어머니 권사님께 새집을 건축해드리겠다고 하자, 권사님이 의외로 쉽게 받아드리더니 새집의 건축조건을 이렇게 말하더란다. “내가 원하는 집은 보석으로 짓고, 동서남북에 진주 문을 열두 개, 길은 황금으로 깔아주라.” 맏아들이 웃으면서 “에이, 어머니도 그런 집을 무슨 수로 짓습니까?” 그러자 그 권사님 왈 “자신 없으면 관두어도 좋다. 나는 이미 그 집을 천국에 마련해두었다네!”

   그러니까 그 권사님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갔던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이 세상의 어떠한 고향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본향사모증에 오늘 걸리길 축복한다. 천국사모증에 걸리면 부산 권사님 같은 가치관이 생기게 된다. 우리 교회도 생기길 축복한다. 아멘.

   2) 제비(5)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 교회봉사를 하는데 순서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순서가 서열이나 차등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 잘 이루어지도록 역할을 하고 그 역할은 봉사자의 신앙고백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제비 뽑아’ 결정된 것은 무슨 지식도 실력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잘 깨우치는 말씀을 소개하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롬 11:13).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에서 30여 년간 예수님 역을 맡아 온 안톤 레인지라는 배우가 연극을 마쳤을 때, 한 여행객 부부가 연극무대로 찾아왔다. 무대 위에는 연극 중에 사용하였던 소품인 큰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그 부부는 십자가를 짊어진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설명을 하고 레인지에게 양해를 얻어 그 십자가를 짊어지려고 하였다. 그런데 몇 차례나 애를 썼지만 십자가를 메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가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이다. 두 부부는 땀을 닦으면서 레인지에게 물었다. “다만 연극일 뿐인데 왜 이토록 무거운 십자가를 사용하십니까?” 레인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는데; “연극만으로는 그분이 겪으신 고통을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무겁게라도 느낄 수 없다면 저는 예수님의 역할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통감하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그 봉사자리가 맡겨졌음을 실감하느냐는 것이다. 실감할 때 순종이고 충성봉사이다. 아멘.

   3) 첫째로(7)

   ‘첫째로’라는 말씀은 차례를 의미함으로 질서를 유지시키는 제도라는 뜻이다(‘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39-40). 이 말씀은 하지 말라는 금지보다 오히려 ‘사모하며’(‘desire earnestly to prophesy’ -NKJV-)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적극적으로 권장을 하고 있다. 단 ‘모든 것을 품위 있게’ ‘질서 있게’하라는 것은 분열이나 혼란, 자기 편리위주로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품위 있게’ ευσχημονως pleasing to look upon, propriety, manner. ‘질서 있게’ ‘κατα ταξιν arrangement, regular disposition, good order. succession’).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게시면 어찌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13)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14)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15)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암 사람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16)

   중요한 사실은 기드온이 스스로 자신을 보는 시각과 하나님이 기드온을 보는 시각이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기드온은 자신을 무능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아예 자포자기 하였다. “저 같은 게 이스라엘을 구하다니 말이나 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을 강하고 유능한 장수의 가능성을 보셨다. 결국 기드온은 300명으로 압승하였다! 이게 ‘품위있게’ ευσχημονως pleasing to look upon, ‘κατα ταξιν regular disposition, good order.’이다. 하나님이 보시기를 따른 순종이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에 은혜로 성도답게 멋지게 반응해보자. 오늘 설교는 다윗 왕이 제사장의 성전봉사를 24반으로 편성한 일인데, 예수님이 오신 때까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대로 봉사, 차등 없는 봉사, 품위 넘치는 질서 봉사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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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현 창            바이올린 : 노 윤 주 

            김 정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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