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0일 설교

September 11, 2017

DaumEditor Wygiwyg Panel

 

 

                                       “온순한 자!”  (대상 22:6-13 ‘성전건축을 양보하는 자’) 17.9.10.

   적자가 계속되는데도 30여 년간 무료로 운영하는 어린이 놀이공원이 몇 년 전에 인터넷에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놀이공원 ‘두리랜드’가 주인공이었다. 3000평에 달하는 부지에 세워진 두리랜드는 입장료가 무료였단다. 1991년 두리랜드를 개장하고 나서 사장님이 입장료를 없앴기 때문이었다. 입장료를 없앤 사장님은 배우 임채무 씨였다.

   임씨는 1988년부터 부지를 조금씩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130억 원 정도 들여서 놀이공원을 세웠단다. 하지만 개장한지 1주일쯤 되었을 때 아이 둘을 데리고 온 부부가 당시 4인 입장료 8000원이 없어서 어찌할지 고민하던 모습을 목격한 임씨는 과감하게 입장료를 없앴는데, 물론 적자도 심각했다. 매달 발생하는 4000만 원 가량 되는 적자를 임씨 자신이 드라마 출연료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충당했지만 결국 경영난으로 지난 2006년부터 3년간 문을 닫기도 했단다. 임씨의 설명이다. “지금도 날씨 좋은 5~6개월만 장사가 되고, 겨울이나 여름에는 빚을 내서 직원들 월급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임씨가 이 무료 놀이공원을 계속 운영하는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란다. 임씨는 40년 전에 단역배우로 촬영차 그 당시 유원지였던 놀이공원 부지를 방문했는데, 어른들이 고기를 구워먹고 술에 취해 노는 동안 방치된 아이들이 깨진 유리병에 발을 다치는 모습을 보고 놀이공원을 설립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임씨의 대답이다. “아이들 웃는 얼굴이 좋아서 하는 거죠. 돈을 벌 생각이었으면 시작도 안 했지요.” 이 마음만큼은 참으로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사람들은 항상 ‘나’ 중심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중심이 되어버리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어렵게 된다. 내 문제가 가장 커 보이고, 내 처지는 항상 힘든 것 같고, 왜 나에게만 이럴까? 나만 세상에서 소외당하는 것 같다는 외로움에 빠지고 그게 심해지면 우울증으로까지 번진다. 이럴 때는 3인칭 일기를 써 보는 게 좋다. 나를 제3자로 보고 ‘그는 ~이다’로 시작하는 일기를 쓰라는 것이다. “어느 날 그는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하였다. 그는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그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야 했다.” 이런 일기가 자신 안에서 나를 끄집어냄으로 제3자의 눈으로 보게 되고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으니까 문제의 원인과 장단점을 쉽게 발견하게 되어 큰일이나 어려운 일도 해내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다윗 왕이 대단한 집념과 열정에 빠져 있었던 성전건축을 오히려 아들 솔로몬에게 넘기는 모습을 아름다우리만치 돋보이게 보여주고 있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6. ‘부탁하여’ צוה 차바 charge, appoint, set up, command. 신신당부하는 모습임! 다윗 왕이 성전건축에 쏟는 열정은 상상을 초월했음(14절. ‘환란 중에... 금 십만 달란트, 은 백만 달란트’ 금 십만X34.08kg = 3,408t(340트럭). 은 백만X34.08kg = 34,080t(3400트럭). 그것도 환란 중에! 어마어마한 집념이었음).

   소위 일류대학출신 실력자들이 대거 지원하였던 신입사원을 뽑은 일화인데,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86명이었다. 이제 면접시험만 남았다. 면접은 사람됨을 알아보는 시험이기에 사장님이 직접 맡기로 했단다. 지원자들은 저마다 사장님의 취향에 맞춰 철저히 준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장님은 지원자들 모두에게 질문을 한마디도 하지 않더란다. 그런데도 86명 중 7명을 최종합격자로 발표하였다. 떨어진 사람들이 궁금해 하였다. 사장님이 이렇게 설명했단다. “우리 회사는 똑똑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면접실로 들어올 때 휴지를 한 장씩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떨어진 휴지를 주워서 휴지통에 넣은 사람만 면접시험에 합격시켰습니다.” 그 해에 휴지를 줍고 입사한 사원들은 다른 해 성적순으로 뽑은 사원들보다 회사 일을 성실하게 잘 감당해가더란다.

   십자가 사랑은 영웅적인 행위가 아니라 희생하는 믿음이다. 영웅적인 행위는 자신을 위한 동기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부끄러운 자기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치한 욕심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 사랑은 자신보다는 이웃이요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 자원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자기과시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고, 보상을 기다리지 않다. 누구를 지배하려고 하지도 않지만 사람을 바꾸고, 세상도 문화를 바꾼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그랬다. 다윗 왕도 태산같이 치솟는 자기욕심을 누르고 성전건축을 아들 솔로몬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그저 헌신으로만 끝냈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런 신앙생활을 하게 될까? 오늘은 저랑 같이 좀 생각하는 마음으로 다윗 왕을 관찰하면서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답을 함께 찾아내 보자.

    1) 하나님의 뜻(8)

    다윗 왕이 성전건축을 무엇보다도 그저 철저한 준비로만 끝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본문의 ‘여호와의 말씀’은 선지자 나단이 다윗 왕에게 전해준 것을 가리킨다(대상 17:1-3, 7, 11-12, 15).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은 곧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며,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순종과 충성의 첫 단추요 성공의 결정적인 열쇠인 것이다.

    인생은 죽음으로 다 끝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현세의 삶에 무게를 두다보니 재림심판도 희미해졌다. 서양인들은 사후 재림심판을 70%이상 믿는데 우리나라나 일본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야 많겠지만 핵심이유 중 하나는 오랫동안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그 혼백이 귀신으로 한동안 떠돈다고 말한다. 불교는 사후에 부처가 되거나 짐승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자연히 운명론이 생기고 운명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점복술사들이 장난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상당수의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조차 점집을 찾고 심지어는 교인들까지 점집을 드나든다고 한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판단하신다고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 9: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7), 다윗은 시 14:1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라고 지적하였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자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처럼 어리석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를 시인하는 자마다 용서하시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허락해 주신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5-26). 아멘.

   2) 평온(9)

   ‘내가 그로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자로 적합했던 이유를 밝힌 말씀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평온을 만들어주실 자라는 게 이유이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절대평온을 누리게 되어 있었다. 이 말씀의 깊은 의미는 하나님의 성전은 평온한 곳이라는 것이다(‘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예수님께서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 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마 21:12-14. ‘기도’는 ‘평온’개념, ‘강도’는 ‘평온’의 반대개념. ‘맹인’과 ‘저는’은 평온의 반대, ‘고쳐주시니’는 ‘평온’임).

    소설 ‘대지’의 작가요 193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펄 벅이 1960년,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 황혼에 경주 시골길을 지나고 있는데,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었다. 달구지에 벼 짚단이 조금 실려 있고, 농부도 짚단을 지게로 지고 달구지를 따라가고 있었다. 합리적인 서양 사람은 당연히 이상하게 볼 광경이었다. 힘들게 따로 짐을 지고 소달구지를 따라 갈 게 아니라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농부도 타고 가면 편하기 때문이었다.

   통역을 통해 펄 벅이 물었다. “왜 소달구지에 짐을 싣지 않고 힘들게 지고 갑니까?”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다.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소? 소는 하루 종일 힘들게 일을 했는데 내가 짐을 져야지요.” 펄 벅은 감탄하며 말했다. “나는 이 장면 하나로 한국에서 보고 싶은 깊은 걸 다 보았습니다. 농부가 소의 짐을 거들어주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인의 위대함을 충분히 깨달았습니다.”

   비록 말 못하는 짐승 입장이라도 이해해 주었던 농부처럼 우리 한국민족은 본래 짐승까지도 배려를 잘하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나부터라야 한다.’는 식의 이기적인 사고로 꽉 차 있지는 않던가? 펄 벅을 감동시킨 시골 농부의 배려를 상실한 지금 우리 한국교회에게 강한 가르침을 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멘.

    3) 여호와께서(12)

    ‘여호와께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11-12절은 다윗 왕이 아들 솔로몬을 축복기도 했던 말이다. 그런데 ‘총명’(בינה 비나 understanding, discern, intelligent. 그렇다면 다윗 왕은 왜 이런 축복기도를 했을까? 이 질문은 성경을 깊이 읽으려는 독자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하다. 솔로몬이 ‘어리고 미숙’하였기 때문이다! 다윗 왕은 성전건축을 하고 싶은 열정이 불타올랐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느라고 솔로몬에게 넘겼다. 그런데 솔로몬은 성전건축을 하기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그 한심함을 채워주려고 축보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연합합심 봉사를 배워서 순종해보자는 것이다.

    흔히 정신은 뇌의 작용이고, 마음은 심장의 작용이라고 본다. 그래서 심장(心臟, heart)을 한문으로 풀어보면 ‘마음이 활동하는 것’(臟 = 月+ 艹 + 臧 착할 장, 숨을 장)이다. 마음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조화인데, 희노애락의 명조합이 행복이다. 육체와 생명이 조화될 때 사람이라고 하고, 분리된 육체를 ‘시체’, ‘사망’이라 하지요. 영혼은 영(靈)과 혼(魂)이 합한 상태인데, 영이 뇌의 작용(정신)을 지배하면 하나님을 믿는 인간이 되고, 혼이 지배하면 감정적인 사람, 육이 지배하면 동물적인 사람이 된다. 어거스틴은 평생 ‘행복’을 찾아 방황하다 결국 ‘행복’을 찾았는데, 그것은 육적인 사람에서 떠나 영적인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알고 그 안에서 쉼을 누렸을 때라고 했다. 다윗 왕도 임종을 앞두고 희로애락이 뇌의 지배를 넘어서서 영이 지배해서 축복기도하며 연합했다. 우리도 영이 지배하길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에서 곱씹어 영혼의 양식으로 삼을 것을 찾아 고르자. 다윗왕은 성전건축의 집념을 꺾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고! 평온생활의 부족함을 시인하였기 때DaumEditor Wygiwyg Panel하나님의 음성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고! 평온생활의 부족함을 시인하였기 때문이었으며! 축복기도로 동참함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배워 실천하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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