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6일 설교
“선지자 나단을 보자!” (왕상 1:11-22 ‘나단의 정치참여’) 17.8.6.
조선조 후기의 선각자 茶山 정약용(1762~1836) 선생이 1816년 5월 유배지 전남 강진에서 맏아들 학연에게 한문으로 쓴 편지의 일부이다. 天下有兩大衡. 一是非之衡. 一利害之衡也. 於此兩大衡, 出生四大級. 凡守是而獲利者太上也. 其次守是而取害也. 其次趨非而獲利也. 最下者趨非而取害也.
그 한문편지를 번역하면; “세상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단다. 하나는 옳고 그른 것의 저울이고, 다른 하나는 이익과 손해라는 저울이다. 이 두 가지의 저울에서 크게 4가지 등급이 생기게 된다.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도 얻는 자가 최고급(太上)이다.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당하는 자이고, 그 다음은 그릇 됨을 추구(趨달릴 추, 재촉할 추)하여 이익을 얻는 자이다. 최하급은 그릇 됨을 추구하다가 해를 당하는 자이다.
다산은 목사(牧使 조선관직 정삼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고 그 시절은 영조의 탕평책으로 당쟁이 그리 심하지 않았고 외침도 별로 없어서 비교적 나라가 평온했단다. 다산은 평탄한 시대에 뛰어난 재주와 인품과 가문까지 갖추고 1789년(27세) 알성시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는데, 집 간판을 여유당(與猶堂 세상을 조심조심 살아가자)이라고 지었던 것만 보아도 그의 출셋길이 탄탄했을 법 한데 신유박해란 천주신앙 박해 때문에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수많은 저작을 남긴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개혁사상가요 대 학자이셨다.
다산의 유배생활은 1810년 9월에 사면되었지만, 반대파들의 방해로 유배해제의 공문발송이 미뤄져 8년을 더 귀양살이를 했단다. 맏아들 학연이 안타까운 마음에 부친께 반대파 세도가들 앞으로 선처를 호소하는 서한을 보내자고 애원하자 다산은 엄중하게 거절했단다. 그러한 서한이야말로 반대파들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며, 애써 지켜온 소신마저 상실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산의 해명을 직접 들어보자. “애걸한들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 그들이 득세하여 다시 중요관직을 차지하면 반드시 나를 죽이고야 말 것이다. 어찌 공문발송 같은 작은 일 때문에 절개를 꺾을 수 있겠느냐!” “내가 절개를 지키려고 이러는 것은 아니다. 그른 것을 추구하여 이익을 얻는 세 번째 등급도 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최하급이나 면하려는 것뿐이다.”
우리는 지금 200여 년 전 茶山의 편지를 한참동안 되새김질하고 있는데, 오늘 설교본문에서도 다산과 비슷한 가치관으로 살아간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누군가? 선지자 나단이다. 설교본문은 지난 주일에 우리가 확인해본 바처럼 다윗 왕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왕권반란을 일으켰고 거기에 대부분 실세들이 합세함으로 반란정국은 아도니야 쪽으로 기우는데 다윗 왕은 병상에 누워서 아무런 보고도 받지 못했다(18-19. ‘왕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왕의 모든 아들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관 요압’). 현실시국에 민감한 철새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아도니야 편을 택하고 지지선언을 할 상황이었다. 그게 유능한 처세이고 똑똑한 판단으로 통하였던 사회도 많았다. 그런데도 선지자 나단은 반란정국에서 성공해가는 아도니야 편을 거절하고 실세도 아닌 후궁 밧세바와 손을 잡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함 실현’을 시도하였다. 그런 점에서 나단은 탐욕과 하나님의 뜻, 가짜와 진짜, 불법 정당화와 하나님의 정의를 분별할 줄 알고 실현하는 참 신앙인이었다. 야고보서대로 표현하면 ‘산 믿음’이었다. ‘좋은 생각도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좋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 에디슨이 남긴 말이란다.
어느 목사님이 사모님과 함께 심방을 갔다 오는데 꼬마 아이들이 골목길에 빙 둘러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발걸음을 멈추었더니 꼬마들 한 가운데에 예쁜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목사님이 꼬마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더니, 한 아이가 하는 말이 “우리가 길 잃은 강아지를 주었는데요. 서로 키우겠다고 해서 내기를 하고 있는데요.” “무슨 내기를 하는 건데?” “우리 중에 제일 센 거짓말을 꼭 사실처럼 말하는 아이가 이 강아지를 갖기로 했어요.” 그러자 목사님이 엄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꾸짖었단다. “너희들, 거짓말 하는 게 얼마나 나쁜 죄인지 모른단 말이야? 난 목사님인데, 너희들만 했을 때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단다.” 그러자 꼬마 아이들이 놀란 표정으로 말없이 목사님을 쳐다보다가 다 같이 말했단다. “이 강아지 목사님이 가져가세요.”
아이들 생각에도 대낮에 새빨간 거짓말을 너무나 당당하게 하고 있는 분이 목사님이라서 감동받았다는 유머이다.
영어로 ‘joy’는 기쁨을 의미한다. 이 ‘joy’라는 말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쁨을 설명할 수 있다. ‘joy’의 첫 J는 Jesus의 첫 자로써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의 인생에서 첫 시작임을 뜻함이고, O는 Others(이웃들)의 첫 글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이웃을 앞세운다는 뜻이다. 그리고 Y는 Yes(예)를 가리킨다. 맨 마지막에 내 의견을 반영할 때 진정한 성취를 이루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이 순서를 얼마나 자주 반대로 바꾸고 살아왔는지 잘 알 것이다. 기도할 때, 자기 의견을 주장할 때, 잔치 자리에서 항상 내가 앞자리나 중앙에 앉곤 한다. 세상나라의 문법상 1인칭은 모두 ‘나’인데, 성경은 1인칭을 언제나 하나님으로 2인칭은 내 도움을 기다리는 강도당한 이웃으로 그다음 3인칭을 곧 ‘나’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단 선지자는 가치관이나 삶으로 볼 때 정직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갔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신앙삶을 나단 선지자와 비교하면서 분발할 것들을 찾아보자.
1) 맹세(13)
나단 선지자는 밧세바와 손을 잡고 무엇보다 먼저 맹세를 지켜나갈 것을 재확인했는데 그 맹세는 사실이었고 하나님의 계획이었다(30,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10.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찌라 그는...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대상 22:7-10). ‘하나님이 보시기에’라면 아무리 위험하고 큰 고난이 따르더라도 존중하고 앞세우며 결정하고 선택하는 사람이 나단 선지자였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점을 배우고 실천할 때 오늘 설교를 잘 들었다고 할 것이다.
앤디 폴디(Andi Pauldi)는 ‘세계기아선교기구’라는 선교단체에서 일하는 여자이다. 뉴질랜드 출신인 그녀는 한때는 술집에서 호스테스로 일을 하기도 했고, 또 트럭을 운전하기도 했고, 닥치는 대로 거친 일들을 하면서 아무렇게나 살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앤디는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만나더니 그녀의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삶의 의미를 찾아 새로운 삶의 목표를 따져가다가, 어느 날 그녀는 성경을 읽는데 이사야 35장 1절 말씀이 감동을 주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이 말씀을 묵상하면 왠지 기쁨이 넘쳐나더란다. “하나님은 사막에도 꽃을 피게 할 수 있구나!” 이 생각이 앤디의 꿈이 되어갔고, 그녀는 이 꿈을 실현하고 싶어 기도하다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가서 그곳에 꽃을 심고 농사를 지어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단다. 그 계획을 듣는 사람들은 다 그녀를 조롱했지만 그녀는 도전하고 또 시도했다가 드디어 그 사막 일부에서 보리와 밀을 수확하고 있단다. 오늘도 그녀는 계속해서 사막을 농토로 바꿔가면서 기아선교를 돕고 있는데, 그녀가 자주 하는 기도란다. “믿기만 하면 사막에도 꽃을 피우게 할 수 있고, 성경에 있는 말씀은 모두 이루어집니다.”
나단 선지자도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존중했고 따랐다. 저와 여러분도 삶으로 따라 하길 축복한다. 아멘.
2) 확정(14)
‘확정하리이다’ 나단 선지자가 밧세바에게 한 말이다( מלא 말라 to be fulfilled. completed, make full. ‘confirm’ -NIV, GN, NKJV- 2:27).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 가려서 앉고 서고 가는 자리를 고른다는 것). ‘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잠 20:26. 말은 흔하지만 언행일치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더라는 것임. 딤전 6:5. 그런데 나단 선지자는 힘없는 후궁 밧세바와 확정을 추진했다는 것임).
18세기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계몽주의 사상가였던 볼테르는 생전에 기독교를 비난했던 자로 유명했는데, 볼테르가 임종할 때 벽을 바라보며 울부짖기를 “나는 틀림없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받은 채 죽는다.” 볼테르의 임종을 지켜본 간호사가 한 말은 “유럽의 모든 부를 다 준다고 해도 나는 임종을 맞이하는 불신자의 침대에 절대로 가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무서운 경험이었다.”
그런데 경건한 성경학자요 주석가였던 매튜 헨리는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전념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깨달은 진리들을 자신의 주석에 기록했다고 한다. 마침내 그가 임종할 때 자기 친구에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과 교제했던 삶이야말로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에게 가장 평안하고 가장 기쁜 삶이었다.”라고 유언을 남겼단다.
나단 선지자도 역모 앞에서 하나님의 계획실현을 선택하고 확정하였다. 이게 산 신앙이다. 우리도!
3) 들어온지라(22)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확정하기 위해서! 나단 선지자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언행일치 신앙인이었다. 저도 목사라서 내 얼굴에 침 뱉은 말이지만 자신의 삶과 아무 상관없는 설교를 목청 높여 해대는 설교자를 너무 쉽게 보는 환경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 슬프다는 것이다.
미국 하인즈 식품회사 사장인 헨리 하인즈는 보고서를 보고 자사식품의 첨가제에 유독성분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단다. 유독성분이 많은 건 아니지만 장시간 복용하면 인체에 해로울 게 뻔했다. 첨가제를 빼면 식품의 신선도가 문제였고, 공개시인하면 같은 첨가제를 사용하는 동종업체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치고... 경영진 회의는 반반으로 나눠졌다. 하인즈는 고민하다가 솔직한 공개를 선택했다. “우리 회사제품의 첨가제에 유독성분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절대 이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신문과 방송에 광고를 냈단다.
예상대로 식품업체가 발칵 뒤집혔다. 경쟁 식품업체대표들이 한 목소리로 하인즈를 비난했고, 그 후 4년 동안이나 첨가제에 대한 공방전을 치렀다. 하인즈는 거의 파산단계까지 기울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자 하인즈의 솔직한 행동을 지지하는 여론이 생겨났고, 결국 하인즈는 미국정부와 소비자들에게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뢰를 얻었다. 그러자 하인즈 제품의 매출은 급성장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하인즈는 2000년도부터 미국 소비자 만족조사(ACSI)에서 1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기업이 되었단다.
하인즈 사장에게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정직함은 고난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결국 승리를 가져온다.’이다. 위기 때 더욱 필요한 게 바로 정직이다. 나단 선지자도 위험천만할 때 정직을 실천했고 승리했다.
저와 여러분은 거짓말공화국에서 신앙생활을 함으로 고충이 크지만 오늘 설교는 어디를 가리키던가요? 나단의 맹세선택, 하나님의 계획 확정, 반란정국에서 언행일치이었다. 우리도 해보자. 자본과 지식, 기술, 경험에 상관없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자(마 10: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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