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30일 설교

July 30, 2017

                                                 “반란하는 자!” (왕상 1:5-10 ‘아도니야의 반역’) 17.7.30.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에 나루터마을이 있단다.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은 그 나루터 강물은 강바닥의 자갈이 훤히 비칠 만큼 맑다고 ‘징파나루’라고 불렀단다(澄波 맑은 파도). 그렇지만 나루터마을 사람들은 ‘징파나루’보다 ‘미수나루’라는 말을 더 좋아한단다. ‘미수’(眉叟)는 조선중기 때 정치가요 학자이며 한의사로 유명했던 허목(許穆 1595.12.11~1682.4.27)의 호이다. 허목은 조선 현종 때 우의정을 지냈고 당파싸움의 남인 지도자였다. 말년엔 고향인 연천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쟁쟁한 인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수나루 건너 허목의 집 마당에 젊은이가 덥석 무릎을 꿇었다. 그는 바로 송시열(宋時烈)의 아들이었다. 송시열은 학자이자 정치가로써 서인의 거목이어서 서로 원수지간이었다. 허목이 방문을 열고 “네가 대체 무슨 일로 왔느냐?” “대감 어르신! 소인의 아버님께서 중병으로 누우신 지 오래 되었습니다. 나라 안 의원들은 물론 중국의원의 약을 썼지만 소용없고 어린아이 오줌까지 받아 드셨지만 중병은 깊어만 갑니다.” “그런데?” “제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길, 대감님 어르신만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셨사오니 제발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허목은 송시열의 아들을 잠자코 내려다보더니 “이리 들어오라.”하고, 병세를 자세히 캐묻더니 약을 지어 주었다. 송시열의 아들은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히며 고마워하고 미수나루를 건너가 말을 타고 잘 아는 의원에게로 달리더니 의원에게 처방약을 자세히 살펴보라고 했다. “어허, 비상처방이군요. 이게 바로….” “그 자가 결국 아버지를 독살하려고 했군.”

   송시열의 아들은 누워계신 아버지께 “아버님, 이 약에는 비상약이 들어있으니 큰일입니다.” 하지만 송시열은 “어허, 넌 아무 말 말고 그 약을 달여 오너라.” “독이 들어 있는데요!” “넌 시키는 대로만 하라니까!” 아들은 고민을 하다가 몰래 비상약을 절반으로 줄이고 약을 달여 아버지께 드렸다. 그 약을 마신 송시열은 놀랄 정도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송시열은 두 달 못되어 다시 몸져눕고 말았다. 송시열은 다시 아들을 허목에게 보냈다. 허목이 병환을 요것저것 묻다가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네가 처방한 약에서 비상을 줄인 게 분명하렸다! 그 비상은 오줌독을 제거하는 것인데, 왜 사람을 믿지 못하느냐?”

   송시열의 아들은 집으로 돌아와 그 일을 아버지께 소상히 전했다. 그러자 송시열 역시 아들을 야단치셨다. “이놈아! 의술은 인술이라는 말도 몰랐단 말이냐? 참의원이라면 병을 기회로 목숨을 빼앗지 않는 법이야! 어서 그 어르신께 다시 사죄를 드려라!”

   오랜 동안 정치적인 적인지라 조정에서 만나면 서로 의견을 달리해서 수없이 다툼과 대립을 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이고 싶었던 송시열과 허목! 그러나 조정에서 물러나면 서로의 훌륭한 점을 인정해주는 성품과 아량이 그들의 가슴에 넘쳐났다는 것이다.

   하나님 자녀의 가슴에도 꽉 채워져야 할 기본 세 가지를 성경의 가르침대로 요약하면 믿음과 소망 사랑인데, 믿음은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됐음을 시인하고 거기에 삶을 맞추는 것이고, 소망은 하나님의 계획실현을 기다리는 삶이며, 사랑은 지금 하나님의 계획실현에 동참하는 헌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세 가지를 잘 조화시킬수록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자녀 삶이지요. 이런 인식을 가지고 오늘 설교본문을 읽어보면 아도니야란 사람이 뭘 잘하고 또 잘못했는지도 분별할 수 있고 그것은 곧바로 저와 여러분의 믿음생활과 직결될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은 침상생활을 하고 있는 다윗 왕에게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그런데 아도니야는 다윗 왕의 넷째 아들이었다(삼하 3:4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윗 왕은 왕 40년에 반란을 세 번 당했음; 압살롬과 세바, 아도니야. 그 중에 압살롬과 아도니야는 셋째와 넷째 아들이었고 둘 다 충분히 왕 재목이었다고 했음. ‘준수’ טוב  톱.  창 1:31. to be agreeable, to act rightly, to make fair, beautiful. 은사, 지능, 지식, 기술, 시간, 건강... 아도니야가 탁월한 장점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었는지 장래가 촉망되는 큰 인물이었다는 것. 그런데도 아도니야는 반란만 일으켰지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초라하게 실패로 끝냈음<39, 49-50>. 더군다나 아버지 다윗 왕은 침상생활을 하고 있을 만큼 허약했기 때문에! 준수함만 안타깝게 했다는 것이다.

   UN이 재정립한 평생연령기준을 보면 미성년기가 1~17세, 청년기가 18~65세, 중년기가 66~79세, 노년기가 80~99세이고, 100세 이상은 장수자라 분류했다. 대폭 늘어난 게 청년기이다. 몇 십 년이 지나면 80세도 중년기로 바뀔 것 같다. 노년의 기준이 엄청 달라졌다는 것이다. 실상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늘 청춘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살아갈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건강한 활력으로 살아가는 노년이라면 당연 행복이다. 노년의 삶은 인생해답을 쌓아둔 보물창고인데, 어떤 가치관으로 사느냐에 따라 자신이 어느 나이층에 속해 있는지 정해진다. 생각을 몸에 맞출 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젊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시간과 건강 두 가지를 다 누릴 수 있는 게 큰 축복이지만 그때에 여행을 할 수 있는 열정까지 갖고 있다면 참으로 의미 있는 노년기를 보낼 수 있다.

   명심보감에 불견자화 휴요종(不見子花 休要種)하고, 무의지붕 불가교(無義之朋 不可交)라.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은 심지 말고, 의리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라는 뜻이다. 준수함을 열매로 만드는 인생을 살자는 것이다. 그런데 아도니야는 준수함을 갖추고도 不見子花요 無義之朋으로 살아갔다.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을 돌아보자. 준수함을 사장시키는 삶은 없는지? 아도니야를 주시하면 선명해지요. 함께!

   1) 스스로 높여(5)

    ‘스스로 높여’ 이 말씀을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표현하면 교만인데,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 16:18)라고 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10. 다윗 왕은 ‘주권’(맘라카 ממלכה   kingdom, royal power, king)은 ‘이 나라도 주님의 것입니다’ -새번역- ‘이 땅의 모든 통치권과 주권도 주님의 것입니다’ -현대어-. 

    南橘北枳(남녘 남, 귤나무 귤, 북녘 북, 탱자 지) 남방의 귤나무를 북방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한다고 해서 환경동화를 일컫는 말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에 안영이란 유능한 재상이 있었단다. 어느 해 안영이 楚(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초나라 영왕(靈王)은 평소에 안영이 비상한 인물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던 차에 이 기회에 그를 시험해 보기로 했단다. 그런데 안영은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외모는 볼품없고 키도 아주 작았단다. 왕이 안영에게 물었다. “제나라는 인재가 별로 없나 보네요. 당신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는 걸 보니...” 안영은 자신의 외모를 노골적으로 비웃는 말로 알아들었지만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리 제나라는 원칙을 지키는 나라이지요.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있는데, 저는 작은 사람 중에 가장 작기 때문에 이렇게 초나라에 오게 된 것입니다.”

   초 나라 왕이 한 방 얻어맞고 말았는데, 마침 그때 포도청 관리가 죄인을 끌고 지나갔다. 왕이 물었다. “그 죄수는 어디 사람이냐?” “제나라 사람인데 절도죄인입니다.” 포졸의 대답을 듣고 왕이 안영에게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합니까?” 그러자 “南橘北枳”(남쪽의 귤을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어버립니다).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하는 것을 보면 초나라풍속 때문인 것 같습니다.”라는 뜻이니 초왕은 또 한 방을 먹은 셈이었다.

    南橘北枳처럼 탁월한 준수함을 죽이는 믿음생활이 있는데 교만이다. 항상 생각나길 바란다. 아멘.

    2) 아비아달과 모의(7)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다윗 왕은 생명의 은인이었다(삼상 22:9-10, 18, 20, 23. 85명이 몰살당할 때 살려줌. 제사장 됨<삼하 20:25. 백골난망 白骨難忘>. 사독체제중심<삼하 15:24-25, 27>. 아비아달은 지극 감사한 게 사실이었지만, 세월이 흘러갈수록 소외된 제사장생활은 섭섭했고 불평불만도 생겨나고 있었음. 이 불평불만이 아도니야와 공통분모이었음. 類類相從 했던 것임).

    지난 2001년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일본유학생 故 이수현 씨는 한일양국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이 이수현 씨의 죽음을 칭송했지만 그의 어머니 신윤찬 씨는 가슴에 묻힌 아들무덤을 떠나지 못했다. 아들을 보고파 어머니는 추모비가 있는 부산 어린이대공원을 매일같이 찾아가 눈물을 뿌렸다.

    그러다가 신윤찬 씨는 공원입구에서 무료급식소를 목격하게 되었다. 한 끼를 얻어먹으려고 줄을 서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보고 결심했다. 아들을 찾는 그 마음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자고... 그게 하늘로 떠난 아들의 소원일 거라고. 신윤찬 씨는 무료급식 봉사활동에 동참하여 일주일에 하루씩 130여 분이 먹는 밥과 반찬을 만들었단다. 아들밥상을 차려주는 마음으로. 10여 년 전까지도 국수나 라면이었지만, 지금은 따끈한 국과 반찬으로 매주 300여 분께 대접해 드린단다. 이웃생명을 위한 숭고한 희생을 17년째 묵묵히 봉사로 꽃피워 온 신윤찬 씨께 축복박수를 드린다. 이런 어머님들이 많아질 때 이 나라는 아름다워질 것이다. 우리도 준수함을 살려서 꽃피워 교회당 밖에서 엿새 동안에 교회로 살길 축복한다. 아멘.

    3) 선지자 나단(8) 

   아도니야는 주변에 야심가 요압과 섭섭파 아비아달만 있었던 게 아니다. 충실과 정의, 감사로 살아갔던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 다윗 왕의 용사들이 37명이나 있었다. 그런데 아도니야는 그들과 의논하지 않았던 게 준수함을 사장시키는 길이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 2:6-9).

   1863년 1월 1일 정오에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하는 법안에 서명하려다 어찌된 일인지 잠시 멈추었단다. 그러다가 링컨은 펜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계속해서 두 차례나 반복했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러한 링컨 대통령을 보고 놀랐다. 그러자 당시 내무장관으로 있던 윌리엄 씨워드가 급히 대통령에게 다가가서 어찌된 이유인지 물었다. “아침 9시부터 손이 떨렸소. 그래서 지금은 오른손이 마비될 정도요. 만일 나의 이름이 역사에 남는다면 이 법안 때문일 것이고, 내 영혼도 그 안에 담겨 있소. 그런데 내가 서명을 하다가 손을 떨게 된다면 훗날 서류를 검토하던 이들이 ‘그가 주저했다’고 틀림없이 말하지 않겠소?” 그러고 나서 링컨은 펜을 집어 들고 탁자로 돌아가서 천천히, 그러면서도 과감하게 자신의 이름을 적더란다. 올바름을 나침반 바늘처럼 떨면서도 추진할 수 있기를 축복한다.  

    자 이제 오늘 설교가 가리키는 화살표를 확인하자. 아도니야의 반란 실패 준수함 교만때문, 불평과 짝, 충실과 멀리. 섭섭하게(עצב 아찹  worried, trouble, grieve, pain. 다윗 왕은 아도니야에게 따끔한 지적을 함으로! 아들 아도니아의 잘못을 성찰하여 고쳐지게 하는 가정교육을 생략했던 게 아쉬움이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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