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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6일 설교

“재앙이 그치게!” (삼하 24:18-25 ‘다윗 왕의 회개제사’) 17.7.16.

사람의 귀 안쪽에 달팽이의 껍질 모양으로 생긴 달팽이관이 있는데 그 속에는 림프액이 들어 있고, 림프액이 달팽이관에 있는 융털들을 건드려서 우리 몸으로 하여금 균형을 잡게 해주는데, 불규칙하게 몸이 마구 움직이면 평형을 잡던 달팽이관 림프액에 그 비정상적인 진동이 그대로 전달되고, 또 뇌에 전해져서 멀미를 하게 된단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인생멀미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높이 올라가는 때가 있는가 하면 아주 뚝 떨어지는 그런 시기도 있고, 성공하는 사업이 있는가 하면 실패하는 일이 있으며, 돈을 많이 버는 상황이 생기는가 하면 돈을 날려버리는 실수에 빠지는 것을 우리의 인생이 반복하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든 칭찬을 받을 때 우쭐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지만, 이웃들에게 욕을 먹거나 비난을 받으며 몹쓸 병이 들면 그 마음도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그 혼돈이 영혼의 달팽이관에 전달되고 영혼은 균형을 잃고 흔들리게 된다. 이러한 영혼의 현상을 우리는 ‘영적 멀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까지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복잡한 삶을 살아왔는데 영혼은 얼마나 많은 멀미를 했겠는가!

우리 주님은 오늘 설교본문을 통해서 영혼의 멀미로 지쳐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영혼의 달팽이관을 바로잡아 ‘영적 멀미’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화평하는 그 신앙 삶으로 회복하는 비결을 잘 보여주시고 계시는데 저랑 같이 확인해 보자(20-21. 다윗 왕은 인구조사를 통하여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려다가 전염병으로 ‘7만 명이 죽는 재앙’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설교를 들어서 잘 알고 있는데, 그 재앙을 그치게 하려고 다윗 왕이 아라우나 타작마당으로 찾아왔다는 것임).

성경을 넓고 깊게 읽어보면 하나님의 자녀 삶에서 순종의 크기가 영성의 깊이이다. 그런데 순종은 이기적인 순종이 있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순종이 있다. 물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할수록 영성이다. 성경에서, 저 멀리 은혜의 바다로 나가 창파를 노 젓고 순종하는 분들을 보면, 한 결 같이 불 시련을 통과한 분들이다. 그래서 참된 은혜는 하나님의 뜻에 항복을 하게 하는 에너지이다. 은혜란? 내 맘에 안 드는 일, 내게 안 맞는 사람을 넉넉하게 품게 하는 여유인 것이다. 그러니 은혜는 아무나 받았다고 속단할 수 없고 은혜바다에 아무나 가 있는 게 아니다. 해변에서 즐기고 노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강 같은 은혜 속에 풍성한 삶을 살고 싶은가? 그냥 십자가에 못 박히자. 그리고 매일같이 유지해 가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하셨다. 왜 자라지 않는가? 왜 곧잘 곤고해 하는가? 죽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어야 살고, 썩어야 열매를 맺고, 순종해야 그물이 가득해진다는 것은 주님이 오실 그날까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신명기 1:2에 이런 말씀이 있다.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마흔째 해’ 그리고 7절에 ‘방향을 돌려 행진하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열하루 길을 40년 걸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불순종을 반복함으로 믿음훈련과목을 이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암 5: 19에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사람이 사자를 피하였더니 곰을 만나고, 곰을 피하고 나니 뱀이 기다렸더라는 것이다. 사람이 사자를 만났을 때, 어떻게든 그 사자와 싸워 이겨야지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사자와 곰까지 피하고 감사하고 나서 뱀에게 물렸다니..... 사자를 피하고 곰을 피했지만 뱀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은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은 교인을 깨뜨리는 훈련을 시키고 고쳐서 가나안에서 살게 하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교회생활이 힘들고 맘에 안 맞는다고,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부터 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훈련시간만 연장되고, 훈련강도만 커지게 한다. 지금 믿음환경에 있는 인간이 자신을 힘들게 하다고 사람을 바꾸려하기 보다, 자신이 순종하면 그 사람도 변하게 된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때가 있다. 하나님이 믿음훈련을 시키려고 허락하신 환경을 바꾸기만 하면 믿음의 진보는 보류되고 만다. 훈련을 통과하고 나면, ‘그때 그 사람’이 훈련코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 환경이 유달리 힘든 게 아니다. 하나님이 교인을 꺾느라고 힘들게 하셨던 것이다. 그 사람이 맘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 그렇게 미운 짓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 장소가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힘들어야 훈련이 되고 고통스러워야 변화되기 때문이다. 소파에서 훈련을 시키는 코치를 보았는가?

성경에 보면 교인이 죽겠다고 떼를 쓰면, 하나님은 억지지만 탕자처럼 응답을 주신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길이 열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형통이 아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형통하였다. 하지만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할 때 마침 배를 만났다. 그 만남을 하나님의 응답이라 우기면 순 억지이다. 막힘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열림에도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깨닫자는 것이다. 광야훈련은 나의 변화에 따라 단축되고 연장되기도 한다. 광야는 ‘봐주시는 법’이 없다. 하나님이 ‘그만!’하셔야 끝난다. 빌립보 감옥을 천국으로 만들고 마는 바울과 실라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신앙 삶으로 돌아와서 재앙을 그치게 하는 다윗 왕을 주목하여 우리의 본을 찾아내 활용해 보자.

1) 말대로(19)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갓의 말대로’ 다윗 왕이 판단과 결정, 선택을 할 때 그 기준을 보게 하는 말씀인데, 이런 게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순종이요 믿음이다. 바로 이런 것을 우리도 할 수 있게 배워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갓의 말대로’에 해당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성령님의 보혜사이다(‘보혜사’παρακλητος advocate, counselor, one sent for assist another.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오.’ 요 15:26,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책망' ελεγχω convict, discipline.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6:13).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 다음으로 ‘갓의 말대로’에 해당한 그것은 증언하는 설교이고 셋째는 성경을 어떻게 읽었느냐(눅 10:26)의 그것이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정직하지만 가난한 한 남자가 회당예배에 참석하다 회당입구에서 가방을 하나 주웠다. 열어보니 일억 원 정도 들어 있는 돈 가방이었다. 돈을 본 순간 살림걱정을 했던 아내, 옷을 사달라고 조르던 딸, 등록금을 걱정하는 아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얼른 집에다 갖다 두고 회당예배에 참석했다. 그런데 예배 끝에 랍비가 광고하기를 “여러분 중에 돈 가방을 주워서 보관하고 있는 분이 계시면 주인에게 돌려주십시오. 가방주인이 후사하겠답니다.” 이 말을 들은 남자는 마음에 가책을 느끼고 주인에게 가방을 돌려주었다. 그런데 가방주인이 보상금을 주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다. 원래 가방에는 2억 원이 들어 있었는데 일억 원만 가지고 왔으니 보상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가방을 돌려주고도 도둑으로 몰리게 생겼다.

억울해서 랍비에게 판결을 청했다. 랍비가 먼저 가방분실자에게 묻었다. “당신이 분실한 가방에는 분명히 이억 원이 들어 있었나요?” “네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일억 원을 저 사람이 챙겼으니 당연히 보상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네요. 나도 분명히 이억 원이 든 가방을 당신이 분실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고 가방을 주운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이 주운 가방에는 일억 원이 들어있었습니까?” “네 확실합니다. 저는 일억 원이 들어 있는 가방을 그대로 돌려주었습니다.” “랍비로서 나는 당신의 말도 믿습니다.” 랍비가 결론을 내렸다. “일억 원이 든 가방은 이억 원이 든 가방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1억 원이 든 가방을 주운 사람은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사용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사람은 我田引水식으로 순종하지 말라는 것이다. 올바른 순종생활을 축복한다! 아멘.

2) 값을 주고(24)

‘내가 값을 주고’ 이 말씀은 ‘내 땀’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드리겠다는 결심이다. 이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쁜 일이다(‘가축 중에서’<레 1:1>, ‘흠 없는 것’<레 3:1>, ‘여호와께서 밤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신 16:1>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3>,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10, 17>, ‘자녀와 노비,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11, 14>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느니라.’<히 13:16. ευποιιας και κοινωνιας doing good and fellowship, partnership, relief, contribute. 힘을 다해서 이바지 함. 옛 혼례음식).

1909년 세계 최초로 여성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웨덴의 셀마 라겔뢰프(Selma Lagerlöf 1858.11. 20. ~ 1940.3.16)가 ‘진홍가슴 새’라는 동화를 썼단다. 그 동화는 이런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잿빛 털을 가진 새를 창조하시고 ‘진홍가슴 새’라고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어느 날 새가 물었단다. “하나님, 저는 전부 잿빛 털뿐인데 왜 ‘진홍가슴 새’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까?” 하나님 왈 “네가 참 사랑을 베푸는 날 네 이름에 합당한 털이 생기게 될 것이야.”

오랜 세월이 흘렀을 때 ‘진홍가슴 새’의 둥지 근처에 십자가가 세워지더니 어떤 사람이 매달렸다. 진홍가슴 새가 날아가서 보니까 십자가에 달린 사람의 이마에 가시관이 씌어졌는데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새는 그 사람의 머리에 앉아서 이마에 박혀있는 가시를 뽑아주었고, 새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런데 새의 목덜미와 가슴에 묻은 핏자국은 아무리 씻어도 남더란다. 신기한 것은 그 후로 그 새가 낳은 새끼들마다 목덜미와 가슴에 선명한 진홍빛 털이 있더라는 것이다. 결국 진짜 아름다운 이름에 맞는 새가 되었던 것이다.

라겔뢰프가 생각한 진짜란 어떤 것인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한 그리스도인이다! 다윗 왕이 바친 제물이 그랬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이길 축복한다. 아멘.

3) 번제와 화목제(25)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렇게 제사를 다윗 왕이 드리자 ‘칠만 명 재앙’이 그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다(대하 3:1). 다윗 왕은 성전터를 만드는 신앙생활을 한 셈이다. 그런데 에스라가 이런 결심을 했다(스 7:9-11. 4개월 행군 = 고난!(1500KM, 50년 전. 성경연구 준행 결심. 학자 겸 제사장. כי 키 because, דרשׁ 다라쉬 visit, search for, ask for. עשׂה 아사 work, make, create. למד 라마드 train, disciple, accustom. ; 학자 겸 제사장이 얼마나 철저히 기획적인 결심을 했는지 그려짐!).

자 이제 오늘 설교가 가리키는 신호등에 우리의 신앙삶을 맞추자. 다윗 왕의 회개제사이다(= 말대로! 값을 주고! 성전터!). 우리도 빗나갈 수 있다. 그럴 때 다윗 왕처럼 ‘칠만 명 재앙’을 그치게 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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