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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2월 26일
2021년 12월 26일 설교
“달려가노라!” (빌 3:10-16 “바울의 믿음 푯대” 2021.12.26.) 이웃나라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 우찌무라 간죠가 기독교와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던 부자에게 저녁 식사를 초대받았단다. 그 부자는 평소에 우찌무라 간죠를 존경해왔기에, 음식을 정성껏 차려서 예의 바르게 대접하였다. 우찌무라는 식사를 다 마치고 집을 나서며 그 부자에게 이런 인사를 하였단다. “오늘 초대해준 저녁 식사 잘 먹었다. 이 돼지야!” 순간적으로 그 부자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겠지요.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그토록 존경한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식사 대접을 했더니, 기껏 인사란 게 돼지라... 분통을 억제하지 못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더란다. “우찌무라 간죠는 온 국민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째서 그런 저속한 말을 자신에게만 했을까? 그분의 인품으로 보아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닌데, 혹시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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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2월 25일
2021년 12월 25일 설교
“목자들의 성탄을 이어가자!” (눅 2:15-20 “성탄의 영향”) 06. 12. 24, 90. 12. 23, 21. 12. 25. 제임스 심프슨(James Simpon 1811-1871)은 마취제를 발견했던 영국 의사이다. 그는 에딘버러 대학교의 외과 의사요 교수로 재직하면서, 환자들이 수술 중에 비명을 지르는 고통에 통감하였다. 그러다가 창세기 2장 21-22절을 읽으면서 두 눈을 번쩍 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갈비뼈 하나를 떼어 내는 것은 의사의 식견으로 볼 때 큰 수술이었다. 그렇게 큰 수술을 받는 동안 아담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잠들어 있었고, 잠에서 깨어나 하와를 보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환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프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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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2월 19일
2021년 12월 19일 설교
“오직 하나님의 의!”(빌 3:1-9 “그리스도인의 가치” 2021.12.19.) 급히 돌아가는 길은 원심력 때문에 바깥쪽이 높아야 차가 제대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도로 면의 경사가 덜하면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은 길을 돌다가 이탈하고 만다. 입체교차로 입구 1km 이전에 ‘속도제한 40Km’라는 표지판을 세워놓았지만 도로 면의 좌우 경사가 완만해 수시로 대형 트럭이 전복사고를 냈단다. 전복한 차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요. “입체교차로를 고치려면 엄청난 돈이 드니까 못 고치는가 보다. 도로를 만들 때 좀 올바로 잘할 것이지...” 그런데 그 입체교차로에서 전복사고를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차들이 대부분 속도를 지키고 천천히 돌아가니까 전복사고는 사라져갔다. 그렇다면 ‘속도제한 표지판’은 예전에도 뚜렷했는데 왜 그렇게 자주 전복사고가 났을까요? 운전자들이 속도제한을 무시한 것이다. 그러면 운전자들이 왜 갑자기 속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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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2월 12일
2021년 12월 12일 설교
“에바브로디도처럼!” (빌 2:25-30“바울의 동역자” 2021.12.12.)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저지 주에서 한인 목회를 하다가 아프리카의 서부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한 후배 선교사님이 메일로 보내온 사연이다. 자기 지역에 거주하는 선교사님들과 교제를 시작하면서 처음 만나는 선교사님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 머뭇거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저절로 머리 숙여 존경할 정도로 선교사역을 하는 성실한 선교사님들이 계시는가 하면, 한편으로 ‘선교사’라는 호칭과 부적합한 삶을 살아가는 가짜들도 적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선교사’로 살아가면서 재물에 묶이고, 자녀에게 묶이고, 고국의 부모님께 묶인 삶을 살면서도 고국에 가면 교회 강단에 서서 모든 짐을 내려놓고 주님께 헌신하는 삶으로 선교하는 것처럼 설교하곤 하는데, 그것은 둔갑에 능한 전형적인 삯꾼 선교사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믿음과 삶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믿음은 추상화처럼 모호해지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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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2월 5일
2021년 12월 5일 설교
“디모데라야!” (빌 2:19-24 “예수님의 일” 2021.12.5.) 돈을 빌려 쓴 집사님이 도망친 바람에 권사님이 시름을 이기지 못하여 새벽기도에 불참하고 있었다. 그래서 목사님이 심방하여 위로하고 기도를 해도 시름을 털어버리지 못하자, 목사님이 다른 권사님과 함께 심방을 갔는데 함께 간 권사님이 대뜸 이렇게 권면하더란다. “권사님, 하나님이 다 아셔. 권사님은 권사답게 하나님께 맡기고 용서해버려.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갑절로 갚아주실거라구. 아니 뭘 꾸물거려. 얼른 ‘아멘’ 하지!” ‘아멘’을 하지 못하는 권사님이 좀 안타까웠지만, 권면하는 권사님은 역시 ‘살아 실행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목사님이 감격했고, 그런 후로 목사님은 심방을 갈 때마다 그 권사님을 불러 동행했단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그 권사님이 구역 집사님에게 보증사기를 당했다. 하도 ‘공장이 부도난다’라고 해서 보증을 서 줬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